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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카게오이] 눈동자 속의 그리움 下 내 말이 끝나자마자 그는 캐리어를 끌고 나무 밖으로 도망치려 했다. 다급하게 팔을 잡자 혼란스러워 보이는 눈이 보였다. 그리고 그 속에 새겨진 내 이름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여전히 비는 지독하게 땅을 때리고 있었다. 빗소리에 그와 나의 긴장한 숨소리가 묻혔다. "도망가지 마세요.“ "-누가 도망친단 건데. 나는 단지 급한 일이 떠올라서 가려고 했을 뿐이야." 그는 내 손을 털어내 듯이 떨어뜨리곤 젖은 앞머리를 넘겼다. 그리고 힐긋 내 눈을 바라보았다. "제 눈 속에도 오이카와 씨의 이름이 새겨져 있나요?“ 궁금했다. 내 눈동자에도 제대로 그의 이름이 떠올랐을까. 찌푸려진 그의 미간을 보니 제대로 새겨져 있는 것 같았다. 손을 들어 눈가를 만지다 캐리어에 걸터앉은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한숨을 쉬면서 .. 더보기
[카게오이] 눈동자 속의 그리움 上 *약간 변형된 네임버스 AU *오이카와 오른쪽 생일 합작 참여 글 체육관 창문 너머의 빗소리, 꿉꿉한 공기와 턱 끝까지 차오른 숨, 유독 더 크게 울리는 배구화의 마찰음. 장마도 어느새 끝자락이었지만 비는 여전히 거세게 땅을 적시고 있었다. 실내를 가르는 휘슬 소리에 거친 숨을 몰아쉬며 옷자락으로 목덜미의 땀을 훔쳤다. 코트 밖으로 나가 수분을 보충하자 시원한 물에 머리의 열이 좀 식는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좀 더 또렷해진 시야로 체육관 내부를 둘러보았다. 벌써 고등학교에서의 마지막 시합을 앞두고 있어 이 체육관도 곧 안녕이었다. 체육관 한편에서 집합이라 외치는 목소리에 빈 물통을 내려놓곤 바로 옆에 놓인 의자에 걸쳐진 타월을 들고 무리로 걸어갔다. 요즘 부쩍 답지 않게 심경이 복잡했다. 알 .. 더보기
[이와오이] 너를 찾아 떠나는 여행 -키보우 AJS-41! 응답하라, 키보우 AJS-41! -지금....해서..... 위험하...... 더 이상 작전은 불가능..... 지지직거리는 잡음에 오이카와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중계실을 가득 채우는, 사형선고 같은 기계음. 모두가 초조한 얼굴로 끊긴 통신을 연결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화면에선 우주 비행선이 위치한 곳에서 붉은 점이 깜빡이고 있었다. 그러나 곧 붉은 점은 자취를 감추며 사라졌다. 점이 있던 자리는 이번에 새로이 발견했던 행성으로, 중력이 지구의 몇 배이기에 위험하다고 판단돼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침대에서 벌떡 몸을 일으키자 어두컴컴한 방안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온몸이 땀으로 축축한 것보다도 방금 꾼 꿈이 더 불쾌했다. 마른세수를 하다가 젖.. 더보기
[우시오이] 유월의 그 날 *이별 소재 주의 그 날은 뭔가 평소와 달랐다. 오이카와를 만나러 가려는데 신발 끈이 자꾸 풀려 끈을 묶느라 걸음이 더뎌졌다. 우여곡절 끝에 겨우 도착한 버스 정류장에서는 바로 눈앞에서 약속장소로 향하는 버스를 놓쳤다. 다음 버스는 20분 뒤에야 사람을 가득 태우고 나타났다. 비좁아서 불편했으나 그 버스마저 놓치면 오이카와와의 약속에 늦을 게 분명해 어쩔 수 없이 올라탔다. 어느새 따뜻하다 못해 덥게 느껴지는 공기에 얼굴 옆선을 타고 땀이 주르륵 흐르는 게 느껴졌다. 손으로 땀을 훔치고 싶었지만 사람이 가득한 버스에서 손을 드는 건 불가능했다. 찝찝함을 참으며 가만히 창밖만 바라보았다. 활짝 열린 창으로 미적지근한 바람이 불어왔다. 왠지 자꾸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러다 익숙한 풍경이 보여 생각을 접고 내.. 더보기
[하나오이] 생일날 아침 하나마키는 시끄러운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건조한 눈을 몇 번 깜빡이자 제일 먼저 갈색 머리칼이 보였다. 그리고 목덜미를 간지럽히는 숨결이 느껴졌다. 오늘따라 눈 부신 아침 햇살도 나쁘지 않게 느껴진다 생각하며 그는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새벽까지 시달린 제 애인은 매트리스가 흔들려도 깨지 않았다. 하나마키는 가볍게 오이카와의 머리카락을 흩트리고는 뺨에 입을 맞추었다. 세상모르고 자는 얼굴이 꽤 마음에 들어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은 뒤에야 하나마키는 욕실로 걸어갔다. 오늘은 하나마키의 생일이다. 맛있는 음식 냄새와 요리하는 소리로 눈을 뜨는 게 제 로망 중 하나이지만 오이카와에게는 이미 선물을 받았으니 그건 다음 기회를 노리자고 생각하며 하나마키는 입을 헹궜다. 그리고 수건으로 얼굴의 물기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