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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우시오이] 유월의 그 날

*이별 소재 주의

 

 그 날은 뭔가 평소와 달랐다. 오이카와를 만나러 가려는데 신발 끈이 자꾸 풀려 끈을 묶느라 걸음이 더뎌졌다. 우여곡절 끝에 겨우 도착한 버스 정류장에서는 바로 눈앞에서 약속장소로 향하는 버스를 놓쳤다. 다음 버스는 20분 뒤에야 사람을 가득 태우고 나타났다. 비좁아서 불편했으나 그 버스마저 놓치면 오이카와와의 약속에 늦을 게 분명해 어쩔 수 없이 올라탔다. 어느새 따뜻하다 못해 덥게 느껴지는 공기에 얼굴 옆선을 타고 땀이 주르륵 흐르는 게 느껴졌다. 손으로 땀을 훔치고 싶었지만 사람이 가득한 버스에서 손을 드는 건 불가능했다. 찝찝함을 참으며 가만히 창밖만 바라보았다. 활짝 열린 창으로 미적지근한 바람이 불어왔다. 왠지 자꾸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러다 익숙한 풍경이 보여 생각을 접고 내릴 준비를 했다.

 

 버스에서 내려서 숨을 깊게 들이 쉬었다 내쉬었다. 여기서 몇 걸음만 더 걸으면 만나기로 한 시계탑이 나올 것이다. 손목시계를 얼핏 내려다보자 어느새 약속 시간 5분 전이었다. 그렇게 느리게 왔는데도 아직 약속시간 전이었다. 답지 않게 잠시 망설이다가 천천히 길을 따라 걸었다. 수많은 인파를 헤치며 길을 걷다 보니 어느새 횡단보도 하나만 남아있었다. 아직 빨간 불이었다. 시계 탑 앞에서 휴대폰을 바라보고 있는 오이카와가 보였다. 혼자 있을 때는 그다지 많이 웃지 않는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오늘은 유독 더 표정이 없는 것 같았다. 긴장감에 손에 땀이 차는 것 같았다. 그리고 바라지 않던 파란 불이 켜졌다.

 

 

 

 “좀 늦었네.”

 

 오이카와에게 가까이 다가가자 그는 휴대폰에서 잠시 시선을 떼 날 확인하고는 다시 화면에 눈을 고정한 채로 말을 걸었다. 그의 손이 빠르게 타자를 치기에 나도 모르게 눈이 향했다. 그러자 화면이 새카맣게 꺼졌다. 검은 화면 위로 그의 얼굴과 하늘이 비쳤다. 오이카와는 뭐가 그리 급한지 빨리 자리를 옮기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별 다른 말없이 자주 가던 식당으로 향했다. 반찬이 정갈해 자주 가는 정식 집이었다. 자리를 잡고 익숙한 메뉴들을 주문하자 다시 말이 없어졌다. 보통은 말재주가 없는 날 대신해 오이카와가 늘 말을 했었는데, 오늘따라 그는 기분이 좋지 않은지 말수가 적었다. 목이 탔다. 물 컵이 어느새 비워져 있었다. 물통을 들고 다시 컵을 채웠다. 컵은 금방 또 비었다. 몇 번 그렇게 빈 컵을 채우다 문득 그의 허전한 왼쪽 손으로 시선이 갔다.

 

 “오이카와, 반지는 깜빡한 건가.”

 

 “? 어어. 오늘 좀 급하게 나오다 보니.”

 

 오이카와는 내 말에 화들짝 놀라며 제 손을 슬쩍 식탁 밑으로 내렸다. 입이 또 마르는 것 같아 물을 마셨다. 침묵을 견디기 힘들단 생각이 들었을 즈음, 문이 열리며 몇몇 반찬이 빈 식탁을 채웠다. 종업원은 나가며 다시 문을 닫았다. 바깥의 소음도 한 번 걸러져 희미하게 들려왔다. 오이카와는 입맛이 없는지 젓가락으로 반찬을 몇 번 들썩이다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그가 평소에 좋아했던 찬거리가 담긴 접시를 그의 앞 쪽으로 가져다 놓자 오이카와가 날 빤히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밥은 먹고 얘기하면 안 되겠나.”

 그러나 아직은 그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아 먼저 가로 막았다. 오이카와는 입술을 몇 번 들썩이다 다시 꾹 다물고는 물을 마셨다. 컵이 빈 것이 보여 물을 채워주었다. 그 물을 마지막으로 물통은 텅 비었다. 곧 시켰던 밥과 국이 나왔다. 나는 서빙 하러 온 종업원에게 물을 좀 더 가져다 달라 부탁하였다. 문이 다시 닫혔다. 방 안에는 식기가 달그락 거리는 소리만 울렸다. 차가운 물로 가득 찬 물통이 왔다. 밥보다 물통이 비는 속도가 더 빨랐다. 밥을 먹는 건지 물을 마시는 건지 모르겠단 생각을 할 때 쯤, 오이카와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미안, 더 이상 못 하겠어. 우리 그만 헤어지자.”

 

 오이카와는 내가 아니라 내 앞에 놓인 접시들을 보며 말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음에도 직접 말로 들으니 잠시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무슨 대답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래.’였던가, ‘미안하다.’였던가. 어떠한 말을 할지 이곳에 오면서 몇 가지 생각해 봤으나 목이 틀어 막혀서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물 컵을 한 번 더 비우고 목소리를 가다듬자 그제야 소리가 나왔다. 이제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거지.

 

 “그래.”

 

 “그 동안 고마웠어. 먼저 일어날게. , 계산은 내가 할 테니까 마저 먹고 가.”

 

 오이카와는 마치 기다렸다는 냥 빠르게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 너머로 사라졌다. 잠시 앞의 빈 자리를 바라보다가 숟가락을 들어 남은 밥을 입에 넣었다. 밥알이 입 속에서 흩어지며 씹히는 것이 느껴졌다. 몇 번 입안에 든 것을 씹다가 힘겹게 삼켰다. 그러다 음식이 목에 걸린 것 같아 마른기침을 하며 물을 마셨다. 새로 받은 물통에는 아직 물이 많이 남아있었다. 붙잡을 걸 그랬나. 이유라도 물어볼 걸 그랬나. 여러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르다 곧 흩어졌다. 그러면 뭐 하나. 그렇게 관계를 이어 붙여도 억지로 이은 관계에는 언젠가 끝이 왔을 터. 먼 미래에 좀 후회할 것 같단 생각이 들었으나 지금의 상황을 바꿀 수 있는 방법도 딱히 떠오르지 않아 그저 무기력하게 밥그릇만 비워나갔다.

 

 

 

 식당을 나오자 기분을 헤집어 놓는 듯한 바람이 불어왔다. 그와 꿈꿨던 세상이 끝나서 그런지 주변 풍경이 낯설게 느껴졌다. 잠시 길을 잃을 것 같은 느낌에 가만히 거리 한 가운데에 서서 내가 가야할 방향을 찾았다. 그러나 주변을 둘러보아도 내가 돌아가야 할 곳은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그렇게 혼잡한 거리에 서서 낯선 거리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