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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이와오이] 너를 찾아 떠나는 여행

 

 

 

 

 

 

-키보우 AJS-41! 응답하라, 키보우 AJS-41!

 

-지금....해서..... 위험하...... 더 이상 작전은 불가능.....

 

 지지직거리는 잡음에 오이카와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중계실을 가득 채우는, 사형선고 같은 기계음. 모두가 초조한 얼굴로 끊긴 통신을 연결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화면에선 우주 비행선이 위치한 곳에서 붉은 점이 깜빡이고 있었다. 그러나 곧 붉은 점은 자취를 감추며 사라졌다. 점이 있던 자리는 이번에 새로이 발견했던 행성으로, 중력이 지구의 몇 배이기에 위험하다고 판단돼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침대에서 벌떡 몸을 일으키자 어두컴컴한 방안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온몸이 땀으로 축축한 것보다도 방금 꾼 꿈이 더 불쾌했다. 마른세수를 하다가 젖은 머리카락을 헝클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이카와가 우주에서 실종된 지 벌써 5년째. 문 옆에 놓인 작은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시자 갑갑함이 좀 사라졌다. 물이 반쯤 남은 통을 다시 냉장고에 넣고 침대 옆에 놓인 스탠드를 켜고 앉았다. 그리고 협탁에 올려져있던 서류를 들어올렸다. 몇 번이나 읽었더라. 이제는 표지만 봐도 내용이 다 떠오르는 서류를 다시 한 번 더 읽었다. 서류는 손때가 타 이미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오늘만을 위해 준비된 프로젝트를 다시 한 번 더 외우고 표지로 돌아오자 이 보고서를 작성한 사람이 떠올랐다.

 

 오이카와가 저 드넓은 우주에서 실종되고 나흘 뒤, 하나마키는 며칠을 밤을 샜는지 초라한 몰골로 나에게 달려와 이 종이더미를 내밀었었다. 붉게 충혈된 눈동자는 몹시 피곤해 보였다. 그래서 그가 얼마나 절박하게 이 서류에 매달렸는지가 느껴져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오이카와의 장례식이 막 끝났을 때라 표지의 키보우 AJS 란 글자만 봐도 속이 메슥거렸으나 하나마키의 간절해 보였던 눈을 떠올리며 표지를 넘겼다. 서류를 다 읽었을 때엔 어느새 나는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익숙한 사무실의 문을 두드리고 들어갔다. 그러자 피곤해 보이는 마츠카와가 장례식 때문에 불편해서 잘 안 입는 제복을 입은 채로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아 서류를 다시 협탁 위에 두고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불이 켜진 복도에는 늦은 새벽임에도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보였다. 커피라도 마실까 싶어 복도를 걸어 공동 식당으로 향했다. 그러자 먼저 와 있던 두 사람이 보였다. 하나마키와 마츠카와는 노트북을 앞에 두고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하다가 나를 발견했는지 인사를 해왔다. 그들은 기대와 걱정, 불안이 뒤섞인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의자를 끌어 그들 앞에 앉자 몇 시간 뒤에 시작될 작전에 대해 최종적으로 점검하고 있었다며 하나마키가 노트북 화면을 보여주었다. 어지럽게 펼쳐진 각종 숫자와 기호들, 그리고 익숙한 행성사진 하나가 보였다. 고개를 끄덕이며 하나마키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 마츠카와가 언제 뽑아왔는지 뜨거운 커피를 내밀었다. 고맙다고 말하며 커피를 마시자 좀 더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 날. 하나마키가 보고서를 가지고 왔던 날. 마츠카와는 그의 설명을 들으며 서류를 몇 번 넘기더니 바로 윗선에 전화를 걸어 미팅을 잡았다. 이제 하나마키가 설계한 프로젝트는 그의 손을 떠나 마츠카와가 책임지고 상부들을 설득시키며 투자금을 끌어당겨왔다. 잠도 줄여가며 수많은 사람을 만나느라 몇 달간 연락이 안 되던 마츠카와가 어느 날, 새벽. 다른 나라에서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피곤한지 잠긴 목소리로 딱 한마디만 했다. 됐다.

 

 하나마키와 마츠카와의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창밖의 하늘로 시선이 갔다. 새카만 밤하늘엔 점점이 별들이 저마다 빛을 내고 있었다. 제각기 다른 밝기를 가진 별들을 바라보다 보니 문득, 저 별 중 어딘가에 오이카와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들자 가슴이 울렁거렸다. 내가 이야기에 집중하지 않는단 걸 알았는지 두 사람이 말을 멈췄기에 그들에게 물어 보았다. 저 별들 중 어디쯤에 오이카와가 있을까. 저기 제일 밝은 별일까? 아니면 너무 멀어서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희미하게 빛나는 별에 있을까. 두 사람 중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유리문을 열고 발코니로 나갔다. 그러자 날 짓누를 듯이 장엄하게 펼쳐진 은하수가 보였다. 고개가 뻐근해질 때까지 하늘을 올려다보자 코끝이 시큰해졌다. 오늘. 저 새카만 어둠을 향해서 나는 날아간다.

 

 하나마키의 보고서는 오이카와, 아니 키보우 AJS-41의 비행사가 살아있을 가능성이 높단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 행성에는 위험 요소들이 적고 충분한 물과 대지가 있단 점, 착륙 중에 통신이 끊겼으나 그리 높지 않은 구간에서 통신이 끊겼기에 큰 고장 없이 착륙했을 가능성이 높단 점, 비행선과 베이스캠프 내부에는 몇 년간 사용할 수 있는 충분한 식량과 산소가 있단 점, 그리고 그곳의 중력이 지구의 몇 배이기에 시간이 느리게 흐른단 점. 하나마키는 그 행성이 지녔을 거대한 에너지 자원과 이후 관광자원으로 개발할 여지가 있단 점들을 덧붙여 설명하며 구출작전 외에도 그 행성을 다시 한 번 탐사할 가치가 많단 점을 강조하였다. 프로젝트 수행 기간은 총 4. 태양계 정도는 몇 주만에 왕복할 정도로 발달된 기술로도 그 행성까지 갔다 오는 데만 꼬박 2년이 걸리기에 적어도 4년은 있어야 어느 정도 연구나 자료수집이 가능했다.

 

 가는 데만 2. 갑자기 오이카와가 있는 곳과 내가 있는 곳 사이의 거리감이 확 다가왔다. 얼마나 떨어져 있는 걸까. 다시 가슴이 갑갑해져 손에 들고 있던 커피를 마셨다. 그새 식은 커피는 씁쓸함만 남겼다. 발코니 난간을 붙잡은 채로 고개를 숙이고 있자 몇 년 전, 오이카와가 새 임무를 받았다며, 나에게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했던 곳도 이 장소였단 것이 떠올랐다. 그 때도 이렇게 별이 많았던가. 나를 바라보며 말하던 오이카와의 얼굴이 벌써 희미해져 기억이 나지 않는 게 슬퍼졌다. 매일매일 잊지 않도록 사진을 보며 얼굴을 되새기는데도 왜 오이카와의 얼굴은 점점 흐려지는지. 갑자기 눈가의 근육이 당겨왔다. 눈 두 덩이를 가볍게 마사지하는데 옅게 물이 베여 나왔다. 난간에 기대 잔뜩 웅크리고 있던 나에게 다가온 마츠카와가 어깨를 두드리며 가서 조금이라도 더 자라며 나를 건물 내부로 데리고 들어갔다. 하나마키의 걱정스러운 눈빛이 느껴져 나는 최대한 운 티를 안 내려고 했다. 그러나 시큰거리는 눈가로 짐작컨대 어떻게든 티가 날 것 같아서 그냥 두 사람에게 짧게 인사를 하곤 방으로 갔다.

 

 침대에 눕자 베개에서 오이카와의 냄새가 나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베개에 얼굴을 파묻은 채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내뱉자 세탁할 때 쓴 세제 냄새만 맡아졌다. 그러다 언젠가 오이카와와 함께 이 침대에 누웠던 게 떠올랐다.

 

 며칠 동안 밤을 새느라 지쳤는지 오이카와는 완전히 곯아 떨어져 있었다. 작게 코까지 골며 자는 오이카와는 내가 깔아뭉개거나, 머리카락을 쓰다듬거나, 얼굴을 만지작거려도 깨어나지 않았다. 자는 사람을 상대로 노는 것도 지쳐서 나는 가만히 오이카와의 옆에 누워서 그를 쳐다보았다. 입을 살짝 벌린 채로 자는 오이카와의 눈가가 평소보다 거뭇해 보여 살짝 쓸어보다가 몸을 일으켜 조심스럽게 오이카와의 입술에 내 입술을 맞대었다. 건조하고 까슬까슬한 입술이 비벼지자 왠지 낯간지러워 졌다. 그래도 얼굴을 떼기 싫을 정도로 그 감촉이 좋아서 몇 번 더 입술을 부비다 천천히 혀를 넣어 오이카와의 입안을 탐색해 보았다. 입술과는 달리 촉촉한 입안을 누비다 움찔거리는 혀를 옭아맸다. 내 방에 오기 전에 커피라도 마셨는지 간간이 커피향이 났다. 키스를 하다 보니 어느새 길어진 오이카와의 앞머리가 그의 눈가를 간지럽히는 게 보여 손을 들어 머리카락을 넘겨주었다. 곧 오이카와가 숨이 막히는지 인상을 쓰며 뒤척이기에 잠시 입술을 뗐다. 가까운 거리에서 숨결이 얽히는 것이 느껴졌다. 뒤척임이 멈추자 나는 기다렸단 듯이 다시 입을 맞추었다.

 

 그 날 잠에서 깬 오이카와가 퉁퉁 부운 입술을 보며 한참 잔소리 했던 걸 떠올리자 작게 웃음이 나왔다. 갑자기 품 안이 허전하게 느껴져 옆으로 돌아누웠다. 잠시 방안 구석구석을 바라보다가 오이카와가 주었던 손목시계를 발견했다. , 저것도 챙겨가야지. 오이카와로부터 신호가 사라졌던 날 어딘가에 부딪히는 바람에 그대로 시간이 멈춰버린 시계니 오이카와를 다시 만난다면 고쳐달라고 해야겠단 생각에 몸을 일으켜 시계를 주머니에 넣었다. 시계를 챙기고 나자 맞춰놨던 알람시계가 울었다. ---- 건조한 음이 그 날 통신이 끊겼을 때의 상황이 떠올라 머리에서 피가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하루빨리 저 시계를 떼어 버리겠다고 생각하며 떨리는 손으로 알람을 끄고 수건을 챙겨 방을 나섰다. 이제 몇 시간 뒤면, 오이카와를 만나러 떠난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앉자 스피커로 긴장한 듯한 마츠카와의 목소리가 들렸다. 준비는 됐는지 묻는 그 목소리에 됐다고 대답하자 마츠카와가 웃는 소리가 들렸다. 기다릴게. 마츠카와의 말에 저절로 주먹이 꽉 쥐어졌다. 그리고 옆에서 하나마키도 말했다. 오이카와 그 자식, 꼭 데리고 와. 그리고 사람 걱정이나 시킨다고 혼내주자. 나는 목이 매여 차마 대답하지 못하고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중계실에서 대화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제 카운트다운을 시작하겠단 말이 들려왔다. TEN. 호흡이 거칠어졌다. NINE. 기대감과 불안감에 속이 울렁거리는 것 같았다. EIGHT. 아니 너무 긴장해서 그런가. SEVEN. 멀미약이라도 먹고 올 걸이란 실없는 생각이 들었다. SIX. 오이카와. FIVE. 조금만 더 기다려.

 

 다행히 안전히 착륙한 오이카와는 통신장치가 먹통이 된 거에 신경질을 내다가 몇 년 전에 준비해 뒀던 베이스캠프로 향했다. 그러나 무슨 이유 때문인지 베이스캠프의 통신장치도 먹통이어서 오이카와는 한숨을 쉬며 우선 주린 배를 채웠다. 그리고 이곳과 지구의 시차를 계산해 보며 벌써 지구에선 몇 년이 흘렀겠단 생각이 들자 허무해 졌다. 통신도 불가능하니 여기서 잊혀진 채로 죽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하는 순간 바깥에서 거대한 굉음이 들렸다. 오이카와는 급하게 우주복을 갖춰 입고 바깥으로 나갔다. 베이스캠프 문을 열자 친숙한 이름이 새겨진 우주선이 착륙해 있었다. 우주선의 문이 열리고, 낯익은 인영이 나오자 오이카와는 중력에 발이 잘 안 움직이는 데도 최대한 빠르게 그에게 다가갔다. 곧 두 사람의 손이 맞닿고, 체온이 겹쳐졌다. 헬멧의 앞부분 때문에 입맞춤을 못하는 것이 아쉬웠다. 오이카와는 헬멧의 유리 너머로 보이는, 자신보다 좀 더 나이가 들어 보이는 그 얼굴을 보며 웃었다.

 

 FOUR. 이와이즈미는 상상에서 깨어났다. THREE. 앞이 흐릿했다. TWO. 부디 돌아올 땐 웃으며 돌아올 수 있길. ONE. 이와이즈미는 주먹을 꽉 쥐었다.

 

 곧 기체가 거세게 흔들렸다. 이와이즈미는 강한 충격에 정신이 흐려지는 것 같았지만 오로지 하나만 생각하며 이를 꽉 깨물었다. 이와이즈미가 정신을 놓기 일보직전, 기체는 안정적으로 궤도에 진입했고 흔들림도 잦아졌다. 이와이즈미는 온통 새카만 하늘 아래로 보이는 푸른 별을 보며 자신이 타고 있는 우주선의 이름을 떠올렸다. きぼう. 希望. 이와이즈미는 희망을 타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와쨩! 이와쨩!”

 

 “, ?”

 “내 말 듣고 있는 맞아?”

 

 “, 며칠 뒤에 떠난다며. 내가 넌 줄 알아?”

 

 오이카와는 내 말에 볼을 부풀리다가 난간을 잡은 채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나도 그를 따라 자연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새카만 하늘이 빛나는 별들로 가득 차 있었다.

 

 “저기 수많은 별 중 한 곳에 간다니 신기하지 않아? 게다가 거긴 중력이 엄청 강해서 시간이 느리게 흐른대. 내가 탐사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엔 이와쨩 혼자 늙어있을지도 몰라!”

 

 “맞고 싶냐. 어차피 네 프로젝트 일정상으론 고작 몇 년 차이밖에 안 되잖아.”

 

 “그야 모르는 일이지. 어쨌든, 갔다 오면 이와쨩이 나보다 나이가 많을 거란 건 확실하잖아. 그거 좀 분하네.”

 

 “어차피 내가 늘 정신연령은 높았잖아. 무슨 상관이야.”

 

 오이카와는 내 농담에도 굳은 표정을 풀지 않았다. 그저 계속 목을 쭉 뺀 채로 하늘만 올려다보고 있었다. 평소와 다른 그 모습에 나는 한 발짝 다가가 오이카와의 팔을 잡았다. 그제야 오이카와가 나를 바라보았다.

 

 “여태까지 계속 같은 시간을 공유했는데, 이젠 계속 어긋나게 되잖아. 내가 고작 며칠 동안 샘플을 채취하며 탐사하는 동안 이와쨩은 몇 개월간 여기서 맛층, 맛키랑 다른 크루들이랑 있는 거잖아. 그게 참 분하고 속상해.”

 

 “어긋나는 게 아냐.”

 

 “?”

 

 “네가 지구를 떠나는 그 순간부턴 내 시간도 느리게 흐를 거니까. 그냥 나에게 시간이 두 개가 생길 뿐이지. 너와 공유하는 시간, 그리고 그저 흘러가게 놔두는 시간.”

 

 오이카와는 가만히 내 얼굴을 바라보다 웃음을 터뜨렸다. 뭐가 그리 웃긴지 그는 손으로 입을 가린 채 크게 소리 내어 웃었다. 평소라면 웃지 말라고 한 대 쳤겠지만 지금은 그저 저 웃는 모습이 보기 좋아 가만히 있었다. 오이카와의 웃음이 잦아들고, 그는 아까보다 개운해진 얼굴로 나와 눈을 맞추었다.

 

 “갔다 올게.”

 

 “오냐, 기념품도 챙겨 와라.”

 

 “응응. 제일 예쁜 돌로 골라올게.”

 

 고개를 끄덕이며 내 목을 끌어안는 오이카와의 뒷덜미를 잡고 고개를 낮추게 했다. 곧 부드러운 입술이 맞닿았다. 우리의 숨결이 섞이자 나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오이카와가 무사히 돌아오길 하늘에서 빛나고 있는 모든 별에게 빌었다.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날 걸 알았다면 난 널 보내지 않았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