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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마츠오이] 읽지 않음 * for 미루님 마츠카와는 교실에 앉아 있다. 해는 어느새 산을 넘어가며 붉은 빛이 길게 교실 안쪽까지 들어오고 있었다. 부활동도 모두 끝난 시간, 마츠카와는 읽지 않은 메시지를 노려보았다. 며칠 전부터 읽음 표시가 사라지지 않는 메시지들을 보며 마츠카와는 한숨을 쉬다 머리를 헝클였다. 오이카와가 자신의 메시지를 무시하고 있었다. 그 뿐인가 학교에서 오이카와는 얼마나 잘 숨어 다니는지 그동안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졸업반이라 더 이상 부활동도 없는 바람에 마츠카와는 오이카와의 머리카락조차도 볼 수 없었다. 다른 녀석들에게 물어보아도 다들 고개를 젓거나 무시할 뿐, 아무도 그가 어디 있는지 마츠카와에게 말해주지 않았다. 마츠카와는 다시 한 번 한숨을 쉬고는 나흘 전 일을 떠올렸다. 봄고 경기 후, 3학.. 더보기
[이와오이] 거짓말 오이카와와 나는 한 마을에서 자랐다. 서로 옆집에서 산 덕분에 뛰어다닐 쯤에는 항상 함께 마을을 헤집고 다니며 크고 작은 사고를 쳤었다. 그리고 들판에서 칼싸움을 할 때면 오이카와는 늘 어디서 배웠는지 모를 솜씨로 모두를 제쳐버렸다. 우리는 암묵적으로 오이카와가 용사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상황은 우리가 열네 살이 되며 바뀌어버렸다. 검술에도 능하고, 항상 밝았던 녀석에게 마을사람들 모두가 그가 장차 용사가 될 것이라며 칭송했었다. 오이카와도 딱히 싫어하진 않았다. 오히려 검술을 더 갈고 닦으며 최연소로 기사단과 맞먹는 실력을 가지게 되었다. 문제는 거기서 발생했다. 작은 마을이었던 우리 마을에 성기사단들이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더니 오이카와를 데리고 가버렸다. 사람들은 나라에서도 드디어 오이.. 더보기
[카게오이] 첫사랑의 시작 *카게오이 전력 [숨소리] 초등학교에서보다 체육관을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길어서 좋다고 생각하며, 카게야마는 부실로 향했다. 그러나 학교 본관에 달린 시계를 보자 어느새 선배들도 모두 씻고 돌아갈 시간이었다. 카게야마는 부실 문이 안 잠겼길 바라며 빠르게 걸었다. 원래 1학년은 부실을 사용할 수 없지만 아까 선배들이 부른 탓에 잠깐 들렸다가 교복 재킷을 두고 와버려서 어쩔 수 없이 가야했다. 탕, 탕, 타앙. 부실로 향하는 철제 계단이 요란하게 울렸다. 녹슨 손잡이는 다행히 돌아갔다. 카게야마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문을 열었다. 낡은 문은 비명을 지르며 부실 내부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카게야마는 부실 한편에 놓인 테이블에 엎드려 자고 있는 오이카와를 발견했다. 카게야마는 저도 모르게 헛숨을 들이켰다... 더보기
[카게오이] 失路, 길을 잃다 바스락, 낙엽이 발아래에서 바스라 졌다.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목적지도 정하지 않고 그저 걸었다. 마른 이파리의 건조한 냄새가 서늘해진 바람을 타고 날아왔다. 또 이렇게 계절이 지나간다. 28살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자 조금 울적해졌다. 거리를 걷는데 옆의 가게에서 사람이 나왔다. 딸랑이는 경쾌한 방울 소리에 반사적으로 신경이 쏠리며 카페에서 흘러나온 커피 향이 느껴졌다. 충동적으로 방금 닫힌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종업원의 인사소리에 대충 아무 메뉴를 시키고 계산을 마쳤다. 카페는 제법 한산했다. 곧 뜨거운 종이컵에 내가 시킨 커피가 담겨 나왔다. 다시 가게를 나오자 몸이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컵을 들고 좀 더 걸었다. 그러다 낙엽에 빨갛고 노랗게 물든 .. 더보기
[카게오이] 비와 당신, 그리고 기다림 for 세이님 비가 옵니다. 딱 그 한 문장을 쓰고 나서 아침부터 자리 잡은 카페에 앉아서 바깥으로 시선을 돌렸다. 우산을 쓴 사람들이 각자 제 갈 길을 가고 있었다. 멍하게 가만히 앉아 있다가 종이에 갖다 대고 있던 펜이 문득 떠올랐다. 아, 역시. 너무 오래 종이를 누르고 있는 바람에 잉크가 번져 있었다. 새하얀 종이 위에 적힌 몇 단어와 커다란 점. 잠시 종이를 찢고 다시 쓸까 싶었지만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다. 창밖의 비에 발이 묶여 저는 오늘도 어쩔 수 없이 오지 않을 당신을 기다립니다. 한 문장을 더 적었다. 이번엔 펜을 내려놓고 커피 잔을 들었다. 차갑게 식어버렸지만 여전히 향은 좋았다. 가만히 잔을 입가에 가져다 대고 숨을 들이키자 커피 향이 코끝을 맴돌았다. 그리고 어느 날 아침이 떠올랐..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