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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하나오이] 생일날 아침

 하나마키는 시끄러운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건조한 눈을 몇 번 깜빡이자 제일 먼저 갈색 머리칼이 보였다. 그리고 목덜미를 간지럽히는 숨결이 느껴졌다. 오늘따라 눈 부신 아침 햇살도 나쁘지 않게 느껴진다 생각하며 그는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새벽까지 시달린 제 애인은 매트리스가 흔들려도 깨지 않았다. 하나마키는 가볍게 오이카와의 머리카락을 흩트리고는 뺨에 입을 맞추었다. 세상모르고 자는 얼굴이 꽤 마음에 들어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은 뒤에야 하나마키는 욕실로 걸어갔다.

 오늘은 하나마키의 생일이다. 맛있는 음식 냄새와 요리하는 소리로 눈을 뜨는 게 제 로망 중 하나이지만 오이카와에게는 이미 선물을 받았으니 그건 다음 기회를 노리자고 생각하며 하나마키는 입을 헹궜다. 그리고 수건으로 얼굴의 물기를 닦은 뒤 그는 욕실을 나갔다. 주방으로 가서 가스레인지 아래에 있는 서랍장을 열자 인스턴트 미역국이 보였다. 상자를 뜯어 내용물은 조리대 위에 얹은 뒤, 하나마키는 상자 뒷면에 적힌 조리법을 보며 국을 끓이기 시작했다.

 국그릇을 식탁 위에 두고 밥을 뜰 때까지도 오이카와는 깰 기미가 안 보였다. 깨워야 하나.... 하나마키는 잠시 망설이다가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밥그릇을 식탁 위에 둔 뒤, 침대로 다가갔다. 오이카와는 베개를 끌어안은 채로 여전히 잘 자고 있었다.

 "오이카와."

 미동도 없었다. 평소에는 작은 소리에도 잘만 깨면서 휴일만 되면 오이카와는 밀린 잠을 몰아서라도 자는지 잘 일어나지 못했다. 하나마키는 머리를 긁적이다가 오이카와를 흔들어 깨우기 시작했다. 오이카와가 인상을 쓰는 게 보였다.

 "일어나. 밥 먹어야지. 야, 오이카와."

 "...좀 만 더 잘래."

 오이카와는 고개를 돌리며 잠긴 목소리로 대꾸해왔다. 하나마키는 그에 지지 않고 계속 오이카와를 흔들며 깨웠다. 오이카와가 끙끙 앓다가 꾸물꾸물 몸을 웅크렸다. 하나마키는 그 모습에 웃음을 터뜨리다 식어가고 있을 밥과 국을 떠올리고는 오이카와의 팔을 잡고 그를 일으켰다.

 "안 돼, 국 식는단 말야. 얼른 일어나."

 "더 자고 싶은데...."

 오이카와는 부스스한 머리를 한 채로 꾸벅꾸벅 졸다가 하나마키의 재촉에 겨우 침대를 벗어났다. 하나마키는 오이카와가 욕실에 들어가는 것까지 보고 나서야 다시 주방으로 가서 냉장고를 열었다. 냉장고엔 아직 고향에서 들고 온 반찬이 가득 있었다. 하나마키는 적당히 찬거리를 꺼내 식탁 위에 쌓은 뒤 밥상을 마저 차리기 시작했다. 새하얀 접시에 적당히 반찬을 덜어낸 뒤 수저까지 놓자 오이카와가 욕실에서 나왔다.

 "맛키가 다 한 거야? 오늘 생일인데 미안하네...."

 "너 못 일어난 데엔 내 책임이 크니까 괜찮아. 얼른 와서 밥 먹어. 배고플 거 아냐."

 오이카와가 하나마키의 맞은편에 놓인 의자에 앉자 하나마키도 자리에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한동안 조용하게 수저가 그릇에 부딪히는 소리만 들려왔다. 그러다 하나마키는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들어 오이카와를 바라봤다.

 "왜?"

 "아니, 그냥.... 오늘 뭐 하고 싶은 거 없나 싶어서."

 "음.... 이미 케이크는 먹었고...."

 하나마키의 말에 오이카와는 눈을 굴려 침대 근처에 놓인 엉망이 된 케이크를 바라보았다. 저걸 먹었다고 해야 할지.... 몸에 발랐다고 해야 할지.... 오이카와를 따라 케이크를 바라본 하나마키는 헛기침을 몇 번 하다 말을 이었다.

 "딱히 볼만한 영화도 없었고.... 그냥 오늘은 이렇게 집에서 쉬었으면 하는데. 괜찮아?"

 "오늘은 맛키 생일이니까 마음대로 해. 나는 같이 있을 수만 있으면 아무거나 좋아."

 오이카와는 무심하게 대답하고는 다시 젓가락을 움직이며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러나 하나마키는 그의 무심한 대답에 잠시 감명받은 듯 젓가락을 입에 물고는 오이카와를 한참 바라보았다. 쟤는 은근히 저런 말 잘 한단 말이지. 하나마키의 시선이 느껴졌는지 오이카와는 씹고 있던 걸 넘기곤 물었다.

 "왜?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어?"

 "키스해도 돼?"

 "뭐?"

 식탁 의자가 뒤로 밀려나는 소리와 함께 오이카와는 그대로 목덜미를 잡히며 입을 벌려야 했다. 그는 젓가락을 놓지도 못한 채로 제 입안을 헤집어 놓는 하나마키의 혀를 맞이해야 했다. 오이카와는 인상을 썼으나 하나마키를 밀어내진 않았다. 하나마키는 제가 좋을 만큼 혀를 섞다가 마치 식사가 끝나고 잘 먹었다고 말하듯 입술을 뗀 뒤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나서야 몸을 일으켰다. 그는 저를 올려다보는 오이카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얼른 마저 먹고 우리 또 침대 가자. 나 아직 선물 덜 풀어본 것 같아."

 "웃기지 마."

 오이카와는 하나마키를 밀어내고는 젓가락을 고쳐 잡고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