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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게오이

[카게오이] 눈동자 속의 그리움 下 내 말이 끝나자마자 그는 캐리어를 끌고 나무 밖으로 도망치려 했다. 다급하게 팔을 잡자 혼란스러워 보이는 눈이 보였다. 그리고 그 속에 새겨진 내 이름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여전히 비는 지독하게 땅을 때리고 있었다. 빗소리에 그와 나의 긴장한 숨소리가 묻혔다. "도망가지 마세요.“ "-누가 도망친단 건데. 나는 단지 급한 일이 떠올라서 가려고 했을 뿐이야." 그는 내 손을 털어내 듯이 떨어뜨리곤 젖은 앞머리를 넘겼다. 그리고 힐긋 내 눈을 바라보았다. "제 눈 속에도 오이카와 씨의 이름이 새겨져 있나요?“ 궁금했다. 내 눈동자에도 제대로 그의 이름이 떠올랐을까. 찌푸려진 그의 미간을 보니 제대로 새겨져 있는 것 같았다. 손을 들어 눈가를 만지다 캐리어에 걸터앉은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한숨을 쉬면서 .. 더보기
[카게오이] 눈동자 속의 그리움 上 *약간 변형된 네임버스 AU *오이카와 오른쪽 생일 합작 참여 글 체육관 창문 너머의 빗소리, 꿉꿉한 공기와 턱 끝까지 차오른 숨, 유독 더 크게 울리는 배구화의 마찰음. 장마도 어느새 끝자락이었지만 비는 여전히 거세게 땅을 적시고 있었다. 실내를 가르는 휘슬 소리에 거친 숨을 몰아쉬며 옷자락으로 목덜미의 땀을 훔쳤다. 코트 밖으로 나가 수분을 보충하자 시원한 물에 머리의 열이 좀 식는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좀 더 또렷해진 시야로 체육관 내부를 둘러보았다. 벌써 고등학교에서의 마지막 시합을 앞두고 있어 이 체육관도 곧 안녕이었다. 체육관 한편에서 집합이라 외치는 목소리에 빈 물통을 내려놓곤 바로 옆에 놓인 의자에 걸쳐진 타월을 들고 무리로 걸어갔다. 요즘 부쩍 답지 않게 심경이 복잡했다. 알 .. 더보기
[카게오이] 망설이지 마세요 * for 세이님 손목시계를 힐끔 바라보자 약속 시간이 훌쩍 지난 게 보였다. 연말이라 시내로 가는 길이 막히는 바람에 카게야마는 헐레벌떡 약속장소로 달렸다. 수많은 인파를 헤치고 시내 중앙에 위치한 광장을 향해 달리자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곧 남들보다 좀 더 큰 키인 덕에 홀로 비죽 튀어 나와 있는 익숙한 뒤통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카게야마는 그대로 오이카와에게 달려가 그의 팔을 붙잡고 거칠어진 숨을 골랐다. “지각이야, 토비오쨩.” 오이카와는 태평하게 손에 들고 있던 커피를 마저 마셨다. 좀 진정이 됐는지 카게야마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죄송해요, 길이 막혀서 버스에 발이 묶였어요.” 오이카와는 뭐라고 더 핀잔을 주려다 추운 날씨인데도 카게야마의 앞머리가 땀 때문에 이마에 덕지덕지 붙은 것.. 더보기
[카게오이] 첫사랑의 시작 *카게오이 전력 [숨소리] 초등학교에서보다 체육관을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길어서 좋다고 생각하며, 카게야마는 부실로 향했다. 그러나 학교 본관에 달린 시계를 보자 어느새 선배들도 모두 씻고 돌아갈 시간이었다. 카게야마는 부실 문이 안 잠겼길 바라며 빠르게 걸었다. 원래 1학년은 부실을 사용할 수 없지만 아까 선배들이 부른 탓에 잠깐 들렸다가 교복 재킷을 두고 와버려서 어쩔 수 없이 가야했다. 탕, 탕, 타앙. 부실로 향하는 철제 계단이 요란하게 울렸다. 녹슨 손잡이는 다행히 돌아갔다. 카게야마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문을 열었다. 낡은 문은 비명을 지르며 부실 내부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카게야마는 부실 한편에 놓인 테이블에 엎드려 자고 있는 오이카와를 발견했다. 카게야마는 저도 모르게 헛숨을 들이켰다... 더보기
[카게오이] 失路, 길을 잃다 바스락, 낙엽이 발아래에서 바스라 졌다.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목적지도 정하지 않고 그저 걸었다. 마른 이파리의 건조한 냄새가 서늘해진 바람을 타고 날아왔다. 또 이렇게 계절이 지나간다. 28살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자 조금 울적해졌다. 거리를 걷는데 옆의 가게에서 사람이 나왔다. 딸랑이는 경쾌한 방울 소리에 반사적으로 신경이 쏠리며 카페에서 흘러나온 커피 향이 느껴졌다. 충동적으로 방금 닫힌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종업원의 인사소리에 대충 아무 메뉴를 시키고 계산을 마쳤다. 카페는 제법 한산했다. 곧 뜨거운 종이컵에 내가 시킨 커피가 담겨 나왔다. 다시 가게를 나오자 몸이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컵을 들고 좀 더 걸었다. 그러다 낙엽에 빨갛고 노랗게 물든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