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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카게오이] 失路, 길을 잃다

 

 

 바스락, 낙엽이 발아래에서 바스라 졌다.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목적지도 정하지 않고 그저 걸었다. 마른 이파리의 건조한 냄새가 서늘해진 바람을 타고 날아왔다. 또 이렇게 계절이 지나간다. 28살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자 조금 울적해졌다. 거리를 걷는데 옆의 가게에서 사람이 나왔다. 딸랑이는 경쾌한 방울 소리에 반사적으로 신경이 쏠리며 카페에서 흘러나온 커피 향이 느껴졌다. 충동적으로 방금 닫힌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종업원의 인사소리에 대충 아무 메뉴를 시키고 계산을 마쳤다. 카페는 제법 한산했다. 곧 뜨거운 종이컵에 내가 시킨 커피가 담겨 나왔다. 다시 가게를 나오자 몸이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컵을 들고 좀 더 걸었다. 그러다 낙엽에 빨갛고 노랗게 물든 거리가 눈에 들어왔다. 손 안의 커피는 알맞게 식어있었다. 두리번거리다가 근처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재능은 꽃 피우는 것, 센스는 갈고 닦는 것. 언젠가 그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의 재능이 꽃 피우기도 전에 선수 생활이 끝났다. 어렸을 때부터 무리했던 탓인지 얼마 전부터 무릎이 말썽이었다. 가만히 서 있어도 떨리는 무릎에 그만 선수생활을 접어야 했다. 더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여기까진 것 같았다. 그럭저럭 무난한 선수였던 것 같다. 딱히 잘나지도, 못나지도 않은 그 정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를 졸업하고, 입단을 하고. 언젠가 피어날 내 재능을 기다리며 죽도록 연습했으나, 글쎄. 나이를 먹을수록 치고 올라오는 수많은 어린 천재들이 제 재능을 뿜어내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멈추진 않았다. 내 한계가 거기라고 믿지 않았기에.

 

 은퇴가 결정 났을 때, 놀랍도록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끝이구나. 라는 말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리고 이제 뭘 하지. 란 생각 뿐. 더 이상 그렇게 죽도록 무언가에 매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아쉽기도 했으나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었고, 또 한편으론 무기력해졌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의 동정과 안타깝단 시선이 싫었다. 그렇게 최선을 다한 일에 그런 평가를 받는 것이 기분 나빴다. 여태까지 노력한 것들이 모두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

 

 부모님은 이제 슬슬 결혼을 해야 하지 않겠냐고 그러셨다. 이와쨩은 그 동안 쉴 새 없이 달렸으니 좀 쉬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유했다. 그리고 여러 가지를 권한 수많은 사람들. 그러나 그 많은 제안 중에서 구미가 당기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건 이십 년간 단 한 가지만 바라보며 살아 온 탓일까. 길을 잃은 것 같았다. 지금까지는 늘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할 것이 넘쳐났는데. 어떡해야 할까.

 

 이젠 차갑게 식어버린 커피를 단숨에 마시고 거리를 바라보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제각기 목적지를 가지고 앞만 보며 걸어가고 있었다. 그 속에서 유독 나 혼자 멈춰있었다. 손안의 종이컵이 살짝 구겨졌다. 그러다 손에 힘을 풀었다. 이제 와서 뭘 어쩌겠어. 이만 하면 됐어. 오이카와씨, 열심히 살았으니까, 괜찮아. 앞으로도 뭔가 하며 살아가면 되겠지.

 

 자리에서 일어나서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위치한 쓰레기통에 컵을 버렸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지. 다시 다리를 움직이려는데 뒤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 익숙하면서도 간만에 들어 낯선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자 역시나. 숨을 고르며 땀을 닦는 것은 짜증나게 귀여웠던 후배였다. 토비오는 진정이 됐는지 허리를 펴며 시선을 맞춰왔다.

 

 “오이카와 선배.”

 

 “동정할 거라면 다시 뒤 돌아서 가 줄래.”

 

 “...”

 

 할 말을 잃었는지 짧은 탄식과 함께 입을 다문 토비오를 바라보다가 다시 뒤로 돌았다. 토비오에게까지 안타깝단 시선을 받으면 정말 끔찍할 것 같았기에. 그렇게 몇 발자국 나아가다 다시 멈추었다. 토비오의 말에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 2424에요!”

 

 “...?”

 

 “저희 승부, 아직 무승부라고요. 게다가 2424니까 듀스에요. 그러니까...!”

 

 “하지만 난 이제 은퇴 했는걸? 경기는 끝났어, 토비오.”

 

 “아뇨,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꼭 직접 공을 만지지 않아도 할 수 있잖아요.”

 

 “코치나 감독이라도 하란 거야?”

 

 “, 몇 년 만 기다려 주세요. 그리고 다시 붙어요.”

 

 단호한 그 눈에 웃음이 나왔다. 의아한 듯이 토비오가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으나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십 년 전에도, 지금도 날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구나. 이제야 좀 쉬어보나 했더니. 토비오. 정말 더럽게 귀엽네. , 좋아. 네가 원하는 대로 죽을 것 같이 힘들어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 줄게.

 

 좋아, 몇 년 뒤에 보자. 반드시 내가 이끄는 팀이 승리할 테니까.”

 

 “그건 두고 봐야 알 일이죠.”

 

 “, 토비오쨩은 어디서 그런 자신감이 나올까? 그래봤자 이 오이카와씨가 이기는 게 명명백백하지만. , 토비오쨩이 명명백백 뜻은 아려나?”

 

 “이제 저도 그 정돈 압니다!”

 

 “...내가 토비오한테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네.”

 

 “?”

 

 “고마워.”

 

 바람에 낙엽이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몇 발작 떨어진 곳에서 서서 날 바라보는 토비오를 바라보았다. 흐트러진 검은 머리카락에 얹어진 노란 낙엽 한 장에 웃음이 나왔다.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자 바스락, 낙엽이 발아래에서 바스라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