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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카게오이] 선물 上

*눈동자 속의 그리움 외전. 전편에서 몇 년이 지난 시점.

 

 알람 소리에 인상을 찌푸리다 손을 뻗어 알람을 껐다. 겨울이라 그런지 여전히 밖은 어두웠다. 오이카와는 머리를 긁적이다 서늘한 공기에 바닥에 떨어져 있는 티셔츠를 주워 입었다. 부스스한 머리를 넘기다 고개를 돌리자 세상모르고 자고 있는 등이 보였다. 오이카와는 규칙적으로 오르내리는 등을 보며 작게 웃다가 그 등의 주인이 오늘 일찍 떠나야한단 사실이 떠올라 그를 흔들어 깨웠다.

 

 “토비오. 오늘 전지훈련 가는 날이라고 안 그랬어? 빨리 일어나.”

 

 카게야마는 눈을 뜨지도 못한 채로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리며 웅얼거렸다. 훈련 가면 며칠 동안 못 본다며 어제 무리하더니. 오이카와는 혀를 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불을 벗어나니 찬 공기가 더 직접적으로 느껴졌다. 그는 침대 주변에 엉망진창으로 떨어진 옷들을 주워서 빨래 통에 넣고는 옷장에서 새 바지를 꺼내 입었다. 그리고 여전히 꿈나라를 헤매고 있는 카게야마를 힐긋 바라보고는 그가 입을 만한 옷을 꺼내 침대 맡에 두었다.

 

 “나 참. 밤새 괴롭힘 당한 게 누군데. 팔자도 좋네, 토비오 쨩은.”

 

 오이카와는 입술을 삐죽이면서도 이불을 끌어올려 덮어주고는 주방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더 자면 아침은 먹기 힘들 테니 간단한 걸 준비하는 게 좋겠지. 냉장고에서 빵이랑 계란을 꺼낸 그는 간단하게 아침을 준비하다가 내친 김에 카게야마가 버스 안에서 먹을 간식도 싸기 시작했다. 오이카와는 준비한 것들을 도시락에 보기 좋게 넣고는 가방에 넣었다. 뿌듯함에 이마에 살짝 맺힌 땀을 닦은 그는 어느새 밝아 오는 바깥을 보며 서둘러 침실로 향했다.

 

 “토비오 쨩, 지금 안 일어나면 진짜 지각이야.”

 

 이불을 거두며 카게야마의 어깨를 아까보단 세게 흔들자 그제야 카게야마가 슬며시 눈을 떴다.

 

 “좋은 아침이에요, 오이카와 씨.”

 

 “, 그래. 너도 좋은 아침. , 얼른 씻고 와. 그러다 진짜 늦어.”

 

 오이카와가 무심하게 인사를 받아주며 카게야마를 일으키자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카게야마가 입술을 꾹 다문 채로 가만히 서서 오이카와가 침대 정리를 하는 걸 지켜봤다. 그러자 그 시선에 오이카와는 구겨진 이불을 펴느라 구부렸던 허리를 세우며 한숨을 쉬었다.

 

 “애도 아니고, 정말. 좋은 아침이야.”

 

 오이카와가 카게야마에게 다가가 볼에 입을 맞추자 카게야마의 표정이 미묘하게 풀렸다. 그리고 오이카와를 안으며 그의 얼굴 곳곳에 입을 맞추었다. 마지막으로 눈가에 입을 맞춘 뒤에 떨어진 카게야마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화장실로 향했다. 오이카와는 못 말린단 듯이 고개를 젓고는 마저 침대 정리를 하고는 카게야마가 두고 간 옷을 욕실 앞에 두었다.

 

 

 카게야마가 씻고 나온 다음에 씻은 오이카와가 머리를 말리면서 식탁에 앉았다. 그러자 커피를 마시던 카게야마가 보고 있던 폰을 내려놓으며 오이카와를 바라보았다.

 

 “오이카와 씨, 저희 훈련 일정이 하루 연장됐대요.”

 

 오이카와는 시무룩한 카게야마를 보며 빵에 버터를 발랐다. 그리고 한 입 베어 물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5일 동안 가는 건가? 잘됐네. 이번에 같이 가는 팀들 실력 좋잖아. 가서 많이 연습하고 와.”

 

 “가만 보면 저만 오이카와 씨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네가 먼저 기회를 달랬잖아?”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이만큼 사귀었으면 오이카와 씨한테도 마음이 좀 생길 법도 하지 않나요.”

 

 오이카와는 헛웃음을 삼키며 커피를 한 모금 넘겼다. 눈치가 없는 게 아니라 정말 머리가 나쁜 걸까. 잠시 동안 오이카와는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괜히 지금 사실대로 말해줬다간 저 꼬맹이가 더 기어오를 지도 모른다는 결론을 내고는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아무 말 없는 오이카와에 속이 타는 건 카게야마뿐이었다.

 

 “오이카와 씨.”

 

 “토비오, 벌써 7시 반인데 안 나가도 돼? 너 집합하는 곳 여기서 좀 멀잖아.”

 

 카게야마는 우물쭈물 거리다가 컵을 싱크대에 넣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휴대폰을 주머니에 챙겨 넣고는 오이카와의 집에 올 때 가지고 왔던 짐 가방을 챙겨 들었다. 카게야마는 어딘가 축 처진 모습으로 운동화에 발을 구겨 넣었다. 오이카와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휑해 보이는 목덜미를 보고는 방에서 목도리를 들고 나왔다.

 

 “더럽혀서 오기만 해 봐.”

 

 꼼꼼하게 목도리를 매 준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주며 뒤로 물러났다. 아니 물러나려 했다. 카게야마가 오이카와를 끌어안지 않았다면. 카게야마는 며칠 동안 할 키스를 다 할 셈인지 한참이나 오이카와를 안 놓아주며 혀를 섞었다. 키스가 길어지자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팔뚝을 꼬집으며 그를 떼어냈다.

 

 “! 적당히 몰라? 적당히? 오이카와 씨 입술 다 닳아서 없어지겠어!”

 

 얼얼한 입술을 만지작거리자 카게야마가 머쓱한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적이다 짐을 챙겨들었다.

 

 “이제 진짜 갈게요. 며칠 뒤에 봐요.”

 

 “빨리 가. 조심히 갔다 오고.”

 

 그 말에 감동이라도 받았는지 잠시 오이카와를 바라보던 카게야마는 오이카와의 뒤통수를 끌어당겨 짧은 입맞춤을 하곤 떨어졌다.

 

 “-많이 좋아해요, 오이카와 씨.”

 

 빠르게 사라진 카게야마의 빈자리를 보며 멍하게 서 있던 오이카와는 붉어진 얼굴을 가리기 위해 두 손으로 마른세수를 하며 제 볼을 몇 번 가볍게 쳤다. 하지만 그는 붉은 귀 끝까진 가리지 못했다.

 

 

 오이카와는 마침 카게야마가 훈련을 간 5일 동안 오프였기에 뭘 할지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는 우선 친구들에게 연락을 넣었다. 간만에 마시자! 간결하면서도 목적의식이 분명한 메시지에 하나 둘 답을 했고 약속 시간은 빠르게 잡혔다. 오이카와는 당장 오늘 저녁으로 잡힌 약속에 서둘러 집을 치우기 시작했다. 다들 도착하기 전에 음식도 준비하려면 많이 바쁠 것 같았다.

 

 청소를 하고 집을 연말 분위기가 나도록 꾸미자 벌써 점심시간이었다. 오이카와는 소파에 널브러진 채로 잠시 쉬다가 뭐라도 먹어야겠단 생각에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냉장고 문을 열자 뚝 떨어지는 입맛에 다시 문을 닫았다. 이상하다. 배는 고픈데 왜 먹고 싶지가 않지. 결국 오이카와는 고민하다가 식빵 봉지를 들고 소파에 앉았다. 잼을 바르는 것도 귀찮아 그냥 퍽퍽한 채로 씹어 먹다 보니 입맛이 더 떨어져 두어 개 먹다 말고 정리를 했다. 바닥에 떨어진 부스러기를 무선 청소기로 정리하고 오이카와는 가만히 소파에 누워 있었다. 심심해서 잡지를 뒤적거리기도 하고 TV 채널을 돌려보기도 했지만 무엇 하나 재밌는 게 없었다. 왜 이럴까. 혼자라서 그런가. 오이카와는 장이라도 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트로 가는 길에 목도리를 하고 나올 걸이라고 후회했다. 꾸물꾸물한 하늘을 보던 오이카와는 코를 한 번 비비고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서둘러 마트로 걸어갔다. 이어폰도 갖고 올 걸 그랬네.

 

 어묵, 야채 몇 종류, 옥수수 통조림, 치즈. 집에서 간단하게 할 수 있는 안주거리의 레시피를 떠올리며 재료를 담던 오이카와는 문득 와인 코너 앞에서 멈췄다. 이와이즈미나 마츠카와, 하나마키는 와인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곧 새해네. 한 병 정도는 사놔도 좋지 않을까. 오이카와는 가격표에 적힌 간단한 설명을 보며 고심하다가 한 병을 골라 카트에 넣었다.

 

 

 집에 돌아온 오이카와는 옷을 갈아입고는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국물을 우려내고 소스와 치즈를 얹은 옥수수를 오븐에 넣었다. 그리고 테이블을 세팅하다가 모자란 음식들을 전화로 배달시켰다. 분주하게 움직이자 어느새 약속시간이 성큼 다가와 있었다. 혹시 옷에 양념이 튀진 않았는지 거울을 보며 이리저리 살펴보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왔나 보다.

 

 “, 진짜 오랜만이다. 그 동안 잘 지냈냐?”

 

 “그럭저럭 지냈지! 얼른 들어와, 밖에 엄청 춥지.”

 

 오이카와는 목도리를 풀며 들어오는 하나마키를 반갑게 맞이하며 미리 데워둔 코타츠로 안내했다. 하나마키는 들고 온 술을 테이블에 꺼내 두다가 오이카와에게 예쁘게 포장된 상자를 내밀었다.

 

 “우리 자주 가던 가게가 연말이라고 세일을 하더라고. 늦었지만 메리 크리스마스.”

 

 오이카와는 고맙단 말을 하면서 신난 얼굴로 상자를 고이 냉장고에 넣었다. 좋아하는 브랜드의 빵이었지만 늘 시즌 땐 바빠서 못 먹던 것이었는데 이렇게 먹을 수 있게 돼서 무척 들떴다. 오이카와는 다 된 음식들을 테이블로 나르고는 하나마키의 옆에 앉아 그 동안 못한 이야기들을 하기 시작했다. 중간 중간에 음식들이 도착해서 이야기가 끊기긴 했지만 대화는 쉼 없이 여러 주제를 오가며 지속됐다. 그러다 좀 긴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 잠시만.”

 

 현관으로 가자 눈이라도 오는지 머리와 어깨에 눈을 매달고 온 이와이즈미와 마츠카와가 있었다. 둘 다 코와 볼이 빨개서 오이카와는 얼른 두 사람을 안으로 들였다.

 

 “늦었네! 하마터면 맛키랑 나 배고파서 음식 다 먹어버릴 뻔했어.”

 

 “오다가 전철을 놓쳐서. , 엄마가 너 갖다 주라며 보내신 것들.”

 

 “이런 거 안 주셔도 되는데, 이제. 감사한다고 전해 줘.”

 

 “오랜만이다, 오이카와. 얼굴 좋아 보이네.”

 

 “맛층도 얼굴 좋네. 회사 일은 어때?”

 

 “, 나쁘지 않지. 피곤하긴 하지만.”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에게 반찬을 건네받고는 마츠카와가 들고 온 봉지도 달라고 손을 내밀었지만 그는 손사래를 치고는 테이블에 앉아 하나마키가 했던 것처럼 사온 술병을 잔뜩 늘어놨다. 반찬들을 정리하고 오자 어느새 다들 테이블의 한 면씩 차지하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새록새록 떠오르는 옛 추억에 웃으며 남은 자리에 앉았다.

 

 “우리 건배사 한 번 할까?”

 

 

 분위기는 무르익었고 다들 술기운으로 얼굴이 약간 달아올라 있었다. 그러다 잠시 대화 주제가 끊겼을 때, 마츠카와가 오이카와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 눈에 있는 그 이름은 볼 때마다 신기하네.”

 

 이름이 새겨진 사람을 처음 봤다고 말했던 마츠카와는 오이카와와 만나면 종종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오이카와를 바라보았다. 가까이서 봐야만 보일 정도로 작게 새겨진 이름이었기에 마츠카와는 가끔 오이카와에게 허락을 받고 그의 눈을 살펴보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한 번은 그 모습을 카게야마에게 들키는 바람에 한동안 단단히 오해한 걸 푼다고 고생했던 적도 있었는데. 오이카와는 문득 떠오른 옛일에 웃으며 말했다.

 

 “나도 아직도 적응이 안 돼.”

 

 “카게야마랑은 잘 지내냐.”

 

 이와이즈미가 술잔을 비우며 슬쩍 물어보았다. 오이카와에게 처음 이름이 떴을 때 가장 걱정했던 사람이 이와이즈미였다. 그래서인지 그는 이렇게 만나면 한 번씩 안부를 물어보았다. 하지만 놀랍도록 오이카와는 괜찮았다. 그래서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이와이즈미는 한 번 웃고는 빈 잔을 채우고 안주를 입에 넣었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하나마키는 두리번거리면서 카게야마가 있는지 둘러보았다.

 

 “근데 걔는 왜 안 보여? 어디 갔어?”

 

 “, 오늘 훈련 갔어. 5일 정도 간다나. 덕분에 오이카와 씨도 자유야.”

 

 “연말인데 빡세네. 심심하면 내 쪽에 놀러 와. 점심시간 맞춰오면 밥 한 끼 정도는 할 수 있으니까.”

 

 “역시 맛키 뿐이야. 저번에 이와쨩한테 찾아갔을 땐 찬밥 신세였는데-.”

 

 “내가 바쁘니까 오지 말랬는데도 네가 기어코 우겨서 온 거잖아, 쿠소카와.”

 

 “그야 그 때가 아니면 한 1년은 못 볼 것 같으니까 그랬지!”

 

 티격태격 거리는 두 사람을 보며 마츠카와와 하나마키는 여전하다고 생각하며 자기들끼리만 잔을 부딪치며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새벽까지 네 사람은 못 다한 이야기들을 하며 회포를 풀었다. 오이카와는 카게야마가 없어도 역시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하며 친구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