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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이와오이] 좀 흔들려도 버스는 계속 나아간다

*그래도 버스는 손을 흔들자 멈춰섰다 이후

 

*for 미루님

 

 

 

 

 눈을 떴다. 오이카와는 제 눈앞의 이와이즈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잠시 인상을 쓰며 자고 있는 그 얼굴을 바라보다가 오이카와는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그 얼굴을 건드려보았다. 손끝에서 따뜻한 온기가 전해지자 오이카와는 그제야 손바닥으로 이와이즈미의 얼굴을 감쌌다. 손에 느껴지는 그 감촉이 좋아서 작게 웃은 그는 곧 침대 옆 협탁 위에서 진동하는 휴대폰 때문에 몸을 일으켰다. 매니저가 방금 출발했다며 보낸 문자였다. 오이카와는 기지개를 한 번 켜고는 조용히 화장실로 향했다. 준비를 마친 뒤, 그는 이와이즈미의 볼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밖으로 나갔다. 어느새 겨울이 돼서 하얗게 입김이 나왔다. 오이카와는 그렇게 간만에 보는 입김이 반가워서 몇 번 더 호- - 하얀 입김을 만들어 보다 익숙한 차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아침 해가 뜨고 밖에서 새가 지저귀자 이와이즈미는 인상을 쓰다가 눈을 떴다. 시계를 보자 아직 알람이 울리기 몇 분 전이었다. 그러나 옆의 빈자리를 보자 잠시 자신이 꿈을 꿨던 게 아닌가 싶어 잠이 완전히 깼다. 오이카와가 누워있었을 자리를 쓰다듬어 봐도 온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이와이즈미는 멍하게 협탁 위 디지털시계를 바라보다가 오늘 이른 새벽부터 촬영이 있다고 했던 오이카와의 말이 떠올랐다. 찡그리듯이 웃은 이와이즈미는 이불을 걷고 일어나 출근 준비를 시작했다. 아침부터 미묘하게 기분이 가라앉아서 그는 약간 신경질적으로 양치를 했다. 그리고 입을 헹구고 제 칫솔을 원래 자리에 놓다가 그 옆에 꽂힌 오이카와의 칫솔을 발견했다. 잠시 빤히 함께 놓인 칫솔을 바라보던 이와이즈미는 슬쩍 웃었다.

 

 추워서 담요를 칭칭 두른 채로 대본을 읽던 오이카와는 하품을 하다가 휴대폰에서 녹색 불빛이 깜빡 거리는 것을 발견했다. 광고겠지 싶어 화면을 켠 그는 이와이즈미로부터 온 메시지에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메시지에는 출근하는 길에 찍었는지 하품하는 고양이 사진과 함께 좋은 아침. 오늘 촬영 몇 시에 끝나? 란 짧은 문자가 와 있었다. 오이카와는 신나서 옆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매니저에게 오늘 스케줄을 물은 뒤, 답장을 보냈다. 그렇게 몇 마디 더 주고받고 하자 저 쪽에서 감독이 그를 불렀다. 오이카와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까와는 달리 힘이 솟아나는 것 같아서 오이카와는 씩씩하게 카메라 앞에 섰다.

 

 출근 시간대의 붐비는 지하철 안에서 끙끙 거리며 오이카와와 문자를 하던 이와이즈미는 이제 촬영하러 가야 한다며 셀카를 찍어 보낸 오이카와를 보곤 웃음을 터뜨렸다. 이와이즈미는 사진을 빤히 바라보다가 이내 누가 볼세라 화면을 끄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곧 내려야 할 역에 도착하고 그는 기운차게 걸어서 회사로 향했다. 회사에 들어가 자신의 자리로 향하는 길에 몇몇 동료 직원들이 인사를 해 왔다. 이와이즈미는 웃으며 인사를 받아주곤 자리에 앉았다. 오이카와와 재회했을 때, 그 팬 미팅 현장에 있었다던 그녀들은 이전과 달리 그에게 편하게 말을 걸기 시작했고, 그 덕에 이와이즈미는 회사 생활이 더욱 즐거워졌다. 그렇게 평소처럼 출근한 이와이즈미는 일하다 점심을 먹고, 다시 일을 하다가 퇴근하게 되었다. 그 동안 오이카와에게 연락이 왔나 싶어 이와이즈미는 몇 번 휴대폰을 들었으나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집에 도착한 이와이즈미는 인상을 찌푸리며 불을 켰다. 어느새 오이카와와 사는 게 익숙해지면서 이와이즈미는 빈 집의 불을 켜는 일을 가장 싫어하게 되었다. 넥타이를 느슨하게 하며 재킷을 소파 팔걸이에 대충 던진 그는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았다. 오이카와의 촬영이 끝났을 시간이었다. 저녁을 먹을까 싶어 주방을 힐끔 바라 본 이와이즈미는 고개를 젓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우선 씻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렇게 느릿느릿 씻고 대충 저녁을 때운 이와이즈미는 다시 벽의 시계를 바라보았다. 이미 집에 도착하고도 남았을 시간이었다. 휴대폰을 바라보았으나 아무런 알림도 없었다. 무슨 급한 일이라도 생긴 거겠지. 이와이즈미는 설거지를 끝내고 소파에 앉아 뉴스를 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뉴스가 끝나고 심야 프로그램이 끝날 때까지도 오이카와에게선 연락이 없었다.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에게 전화를 해 보았으나 휴대폰이 꺼져있단 말만 나왔다. 그래서 그는 오이카와의 매니저에게 전화를 걸었다. 매니저는 갑자기 소속사 회식이 잡혔었다며, 방금 오이카와는 택시를 타고 갔다고 말한 뒤 저 쪽에서 그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전화를 끊었다. 이와이즈미는 소파에 앉아서 시계만 바라보다가 분침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을 때, 겉옷을 챙겨서 밖으로 나갔다. 아니, 나가려고 했으나 현관문 앞에 쭈그려 앉아있는 오이카와를 발견하고 멈춰 섰다.

 

 촬영이 끝나고 갑자기 단체 회식이 잡히는 바람에 오이카와는 어쩔 수 없이 회식에 참여해야 했다. 마음 같아서는 얼른 집에 가서 이와이즈미와 함께 저녁을 먹고 싶었으나 사장님과 동료들이 그를 붙잡아서 피할 수도 없는데다, 휴대폰 배터리까지 나가서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에게 연락할 타이밍도 놓쳐버렸다. 그렇게 몇 시간. 어느 정도 사람들의 관심이 떨어져 나갔을 무렵, 오이카와는 매니저에게 이만 간다고 이야기를 한 다음 택시를 탔다. 몸에 베인 술 냄새 때문에 더 취기가 도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오이카와는 집 앞에 내려서 비틀거리며 자신의 집이 있는 층에 도착했다. 오이카와는 현관문을 열기 위해 손을 들었다. 그리고 다시 손을 내렸다. 이 문을 열었을 때에 아무도 없을까봐 겁이 난 그는 밖에서 불이 켜져 있는지 확인하고 들어올 걸 그랬다고 후회하며 그 자리에 쭈그려 앉았다. 그리고 눈을 감은 채, 이와이즈미를 떠올렸다. 이와이즈미가 자신의 텔레파시를 받고 뿅 하고 나타나길 바라면서 오이카와는 계속해서 그를 떠올렸다. 얼마나 그렇게 앉아 있었을까. 오이카와가 다리에 감각이 안 느껴진다고 생각할 무렵, 문이 열렸다. 그 소리에 눈을 뜬 그는 현관의 센서등 때문에 눈이 부시다고 생각하며 이와이즈미를 올려다보았다.

 

 이와이즈미는 예상치도 못한 장소에 있는 오이카와를 보며 놀라서 그저 눈을 깜빡이며 그를 내려다보았다. 그러다 오이카와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자 인상을 찌푸렸다. 오이카와를 일으키려고 몸을 굽히는데 오이카와가 두 팔로 이와이즈미의 목덜미를 꽉 끌어안더니 그의 어깨에 고개를 묻고는 뭐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이와쨩이 없을까봐 무서웠어.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의 그 말에 희미하게 웃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의 등을 두드려 주다가 그의 목덜미를 잡고 입을 맞추며 집안으로 들어갔다. 현관문이 닫히고 복도의 센서등도 곧 빛을 잃었다. 그러나 현관문 너머에서는 희미하게 따뜻한 빛이 세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