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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이와오이] Perfume

*영화 향수를 소재로 함.

 

 

 오이카와의 향기가 흩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와이즈미는 주인을 잃은 옷장에서 옷을 몇 벌 꺼내 코를 묻었다. 희미하게 오이카와의 향이 나는 것 같아 그는 더욱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옷을 다시 걸어둔 뒤 침대로 가자 침대도 마찬가지였다. 이와이즈미는 침울한 표정으로 침대에 얼굴을 묻었다.

 

 오늘은 오이카와가 죽은 지 1년이 된 날이었다. 작년 이맘때쯤, 실종됐었던 오이카와는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오이카와는 머리카락도, 옷도 아무 것도 없는 채로 차가운 길바닥에서 뒹굴고 있었다. 그날 보았던 오이카와의 새하얀 나신은 아직도 이와이즈미의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는 오이카와가 그리운 듯 이불을 쓸어보았다. 그리고 곧 문밖에서 오이카와의 어머니가 이와이즈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끼던 아들을 잃은 그녀는 여전히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힘이 없었다. 이와이즈미는 그녀의 미약한 목소리에 몸을 일으켜 방을 나섰다. 문을 닫기 전, 그는 오이카와가 살아 있을 때와 전혀 달라진 것이 없는 방을 눈으로 한 번 훑어보았다.

 

 오이카와를 닮은 그의 어머니는 검은 옷을 입은 채 저녁을 차리고 있었다. 이와이즈미는 그녀를 도와 밥과 수저를 식탁에 놓은 뒤 의자를 빼 앉았다. 오이카와가 죽은 뒤, 그의 가족은 거의 각자 생활을 했다. 그의 아버지는 늦은 밤이 돼서야 집에 들어왔으며, 새벽에 해가 뜨자 마자 출근했다. 그의 형은 아예 동생의 흔적을 보는 게 힘든지 집을 얻어 나갔으며, 그의 어머니는 하루종일 집에만 머물며 그의 아들을 그리워했다. 이와이즈미는 눈가가 발갛게 부어오른 오이카와의 어머니를 바라보다가 수저를 들었다. 그리고 조용히 밥을 떠서 입에 넣었다.

 

 식사를 마치고, 이와이즈미는 시계를 보았다. 7. 이제 돌아 가야할 시간이었다. 이와이즈미는 과일을 내놓는 오이카와의 어머니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녀는 무척 아쉬워하는 것 같았으나 군말 없이 현관으로 향하는 이와이즈미를 따라 나왔다. 이와이즈미는 운동화를 신고 바닥을 가볍게 톡톡 찼다. 신발이 제대로 신긴 걸 확인한 이와이즈미는 그녀에게 인사하기 위해 몸을 돌렸다. 그러자 그곳엔 울고 있는 오이카와의 어머니가 있었다. 당황한 그는 그녀를 달래기 위해서 안절부절못했다. 그녀는 이와이즈미를 끌어안으며 숨 넘어 갈 듯이 울었다. 오이카와도 신발을 신고 나면 꼭 그렇게 바닥을 찼다며, 오이카와가 너무 보고 싶다고 우는 그녀를 보며 이와이즈미는 슬픈 표정으로 그녀의 등을 두드렸다. 이와이즈미의 어깨에 얼굴을 묻은 그녀는 갑자기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그의 옷 냄새를 맡았다. 이와이즈미는 의아해 하며 그녀를 바라보자 오이카와의 어머니는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이와이즈미에게서 오이카와의 냄새가 난다며 그녀는 비틀거렸다. 그러자 이와이즈미는 제 옷을 코에 가까이 가져다 대고 냄새를 맡다가 싱긋 웃었다. 아까 오이카와 침대에 누워서 그런 것 같다며 이와이즈미는 그녀에게 너무 슬퍼하지 말라며 말하고는 현관문을 나섰다. 오이카와의 어머니는 이와이즈미가 나가자 현기증이 돌아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와이즈미에게서 난 향은 침대에 잠깐 누워서 배인 향이라기엔 지독하게도 생생했다. 마치 오이카와가 살아있기라도 한 것처럼.

 

 이와이즈미는 집에 들어가자마자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서 주머니에서 작은 병을 하나 꺼냈다. 투명한 병에는 마찬가지로 투명한 액체가 찰랑이고 있었다. 이와이즈미는 뚜껑을 열어 향을 맡다가 제 몸에 살짝 뿌렸다. 그는 절반 정도만 남은 액체를 아까워하면서 그 향에 취한 채로 오이카와를 떠올렸다.

 

 1년 전, 오이카와는 새로 사귄 여자 친구를 집에 데려다 주고 집으로 가고 있었다. 이와이즈미는 그런 오이카와의 뒤를 밟고 있었다. 아까 여자 친구의 집 앞에서 입을 맞추는 오이카와를 본 뒤라 이와이즈미는 배신감에 몸을 떨고 있었다. 곧 오이카와는 인적이 드문 골목길에 들어섰고, 이와이즈미는 근처에 굴러다니는 벽돌을 쥐고 그 뒤를 따라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이와이즈미가 정신을 차렸을 때, 오이카와는 이미 숨을 멈춘 상태였다. 그는 자신이 저지른 짓에 당황하며 급하게 오이카와를 안아 들었다. 식은 오이카와의 몸을 끌어안고 우는 이와이즈미는 점차 옅어지는 오이카와의 향을 느낄 수 있었다.

 

 오이카와를 급하게 제 방에 데려 온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의 목덜미에 코를 묻었다. 다행히 아직까지 체취는 남아있었다. 그리고 언젠가를 꿈꾸며 평소에 준비해 왔던 도구들을 꺼내왔다. 그렇게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를 작은 공병에 담았다.

 

 이와이즈미는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후회하며 향수병에 조심스럽게 입을 맞추었다. 아직까지도 이렇게 사랑하는데 이제 오이카와는 이 병에 담긴 게 전부였다. 이와이즈미는 아려오는 가슴을 움켜쥐고 제 몸에서 느껴지는 오이카와의 체향에 눈을 감았다. 마치 오이카와에게 둘러싸여 있는 것 같은 느낌에 그는 미약하게 입 꼬리를 올려 웃었다. 그래도 이렇게나마 가질 수 있어서 다행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