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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이와오이] 그래도 버스는 손을 흔들자 멈춰섰다

*이미 버스는 떠났고 이후

 

 

 이와이즈미는 일을 하다가 메시지가 왔다고 깜빡이는 불빛이 거슬려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화면을 켜고 메시지 아이콘을 누르자 오이카와의 팬클럽에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 팬 미팅에 당첨됐다며 날짜와 장소를 알려주는 문자였다. 이와이즈미는 한숨을 내쉬었다. 720, 오이카와의 생일에 맞춰 한다는 팬 미팅. 술에 취해 자신의 손가락이 멋대로 신청한 것이었다. 이와이즈미는 고민되었다. 갈까. 말까. 기왕 당첨되었으니 멀리서 보는 것 정돈 괜찮지 않을까. 휴대폰 화면을 끄고 그는 일을 하면서도 계속 머릿속으로는 고민했다. 갈까, 말까.

 

 괜히 왔나. 이와이즈미는 건물 입구 앞에서 머리를 헝클이며 후회했다. 온통 분홍빛으로 꾸며진 입구에는 여성 팬들만이 길게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속에서 혼자 튈 걸 생각하니 머리가 아파진 이와이즈미는 그냥 돌아갈까 생각했다가 우연히 스태프들이 지나가며 한 대화에 대기 줄의 제일 끝에 가서 섰다. 그러고 보니 올해도 공룡 인형 들고 나온 댔지?

 

 곧 입장이 시작되었다. 가슴이 떨렸다. 혹시 오이카와가 드라마처럼 자신을 알아봐 주는 게 아닐까 라는 기대와 그냥 알아봐 주지 않았음 하는 떨림이 교차했다. 이와이즈미는 신분증을 보여주고 야광 봉 같은 굿즈를 한아름 받은 뒤에야 어두컴컴한 극장 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 지정받은 자리에 앉자 홀로 환하게 빛나고 있는 무대가 보였다. 그리고 그 무대를 중심으로 배치된 수많은 좌석들이 보였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온다면 오이카와가 자신을 발견하긴 어렵겠단 생각에 이와이즈미는 살짝 실망했다. 아쉬운 마음을 다독이며 이와이즈미는 무대를 둘러보았다. 무대는 각종 풍선이나 인형으로 꾸며져 있었다. 그리고 한 가운데에는 테이블과 의자 두 개가 놓여 있었다. 곧 무대의 불도 꺼지더니 무대 위에 설치된 스크린에서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좌석을 가득 채운 사람들은 입을 모아 함께 숫자를 외쳤다. 그리고 노래와 함께 무대에 불이 켜지고. 오이카와가 활짝 웃으며 서 있었다.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가 오프닝 멘트를 하는 동안 단 한 순간도 그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어렸을 적 자신이 주었던 공룡 인형을 안은 오이카와는 자연스럽게 팬들과 소통하며 웃고 있었다. 어느 정도 이야기를 진행하던 오이카와는 공룡 인형을 의자에 앉히고는 그 옆에 자신이 앉았다. 곧 무대 한편에서 커다란 케이크가 나왔고, 오이카와는 제 나이만큼 꽂힌 초를 보며 초가 너무 많다고 우는 소리를 하다가 불을 껐다. 케이크를 들고 나온 스태프들은 오이카와의 얼굴에 장난스럽게 케이크를 묻혔다. 오이카와는 얼굴에 크림을 잔뜩 묻히고서도 즐거운지 크게 웃었고 팬들은 준비했던 폭죽을 터뜨리며 사랑한다고 적힌 플래카드를 펼쳐 들었다. 오이카와는 그 이벤트에 눈물을 글썽이며 감사하다고 연신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팬들은 훌쩍이는 오이카와를 보며 울지 마.’라고 연신 외쳤다.

 

 얼굴을 말끔하게 닦고 나온 오이카와는 특별 이벤트로 자신의 눈에 띄는 팬들을 선별해 소원을 들어주기 시작했다. 커다란 공룡 인형을 들고 온 팬은 인형을 선물로 줄 테니 노래를 불러달라고 했고, 오이카와가 좋아하는 우유 빵을 가지고 와서 열심히 흔든 팬은 같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그리고 가장 크게 오이카와의 이름을 부른 팬은 애교를 부려달라고 말했다. 극장 안의 모두가 오이카와를 보며 웃었고, 오이카와도 그들을 보며 진심으로 웃었다. 그리고 이와이즈미는 그 속에서 웃을 수 없었다. 저렇게 빛나는 곳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으며 웃는 오이카와를 보자 자신이 그에게 다시 다가가도 되는지, 자신이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와이즈미는 쓰게 웃으며 그만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그러나 무대에서 오이카와가 하는 말에 이와이즈미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멈추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여기에 혼자 오신 남성분이 계신다던데. 어디 계세요?”

 

 사람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곧 이와이즈미의 주변 사람들은 그를 힐끔 쳐다보기 시작했다. 오이카와는 두리번거리면서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쑥스러움이 많으신 분인가 보네요. 제 남성 팬은 잘 없어서 꼭 같이 얘기해 보고 싶은데. 정말 안 계시나요?”

 

 탕, 하는 소리와 함께 이와이즈미를 향해 조명이 켜졌고 옆 자리에서 마이크가 건네졌다. 이와이즈미는 빨리 받으라고 재촉하는 손에 얼떨결에 마이크를 받아 들었다.

 

 “안녕하세요, 꼭 운동하셨을 것처럼 생기셨어요. 엄청 몸 좋아 보이시는데 무슨 운동 하셨나요?”

 

 오이카와가 이와이즈미를 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이와이즈미는 이목이 집중된 것을 느끼며 간신히 마이크를 들고 오이카와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서로 마주한 게 몇 년 만이더라. 이와이즈미는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고등학교 때까지 배구를 했었습니다.”

 

 “역시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하셨군요. 저도 대학 때까지 배구했었는데 반가워요.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이와이즈미입니다. 이와이즈미 하지메.”

 

 “그래요? 이것 정말 인연이네요! 여기 제 단짝 이름이 이와쨩이에요. 그러고 보니 좀 닮으신 것 같아요. 안 그래요, 여러분?”

 

 오이카와가 제 옆에 앉아 있는 공룡 인형을 들어 올려 인형 손을 인사하듯이 흔들었고 사람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다시 인형을 의자에 둔 오이카와는 마이크를 다시 들었다.

 

 “언제부터 제 팬이셨나요?”

 

 “처음부터요. 데뷔했을 때부터 쭉 지켜봤습니다.”

 

 박수소리가 극장에 울렸다. 오이카와의 입 꼬리는 올라가 있었지만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가 지금 전혀 웃고 있지 않단 걸 느낄 수 있었다. 뜨거운 조명 때문인지 땀이 흘렀다.

 

 “영광이에요. 그 동안은 팬 미팅 같은 데서 못 뵌 것 같은데 오늘 처음 오신 건가요?”

 

 “, 그 동안 여건이 안 됐는데 어쩌다 이번에 당첨이 돼서 올 수 있었습니다.”

 

 “그렇군요. 혹시 질문하고 싶으신 거라도 있으신가요?”

 

 “... 저 공룡 인형, 오이카와 씨에게 소중하신 건가요?”

 

 “...... , 제 소꿉친구가 준 거 라서 굉장히 소중해요.”

 

 오이카와의 말에 팬들이 수근 거렸다. 저 인형은 오이카와가 데뷔했을 때부터 계속 언급된 것으로 누가 준 것인지 논란이 많았기 때문이다. 오이카와는 잠시 인형을 바라보다가 스태프의 사인에 마무리를 했다.

 

 “, 시간이 다 됐네요. 이야기 나눠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뵈면 같이 식사 한 번 해요.”

 

 “저야 말로 영광이죠. 항상 응원하고 있겠습니다.”

 

 팬들은 자신이 그 대상이 아닌 것에 아쉬워하며 야유했다. 마이크는 다시 이와이즈미의 손을 떠났고 그를 향한 조명도 꺼졌다. 곧 무대에는 게스트로 온 동료 배우나 가수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이와이즈미는 더 이상 무대를 바라볼 수 없었다. 양손이 너무 떨려서 그는 몇 번의 시도 끝에 자신의 짐을 챙겨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밖으로 빠져나가려는 순간 오이카와의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가지 마! 이와쨩!”

 

 이와이즈미가 뒤를 돌아보자 오이카와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팬들은 물론이고 게스트들마저 당황하며 오이카와와 이와이즈미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오이카와는 이젠 아예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몇 년 동안 연락도 안 하더니 그렇게 가버리는 거야? 너 정말 이기적이야. 나는 그동안 얼마나, 얼마나 기다렸는데! TV에 얼굴이 나오니까 맛층한테도, 맛키한테도 연락이 와서, 그러면 곧 이와쨩한테도 연락이 오겠지, 문자라도 한 통 오겠지 하며 얼마나 기다렸는데...!”

 

 이와이즈미는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주저앉아 서럽게 우는 오이카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한 발짝, 한 발짝, 오이카와에게 이와이즈미는 가까워졌다. 무대에 올라가자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를 올려다보았고 이와이즈미는 그를 일으켜 주었다. 공연장은 숨소리도 들릴 만큼 조용했고 그 넓은 장소에 있는 모든 사람의 이목이 자신에게 집중된 것을 안 이와이즈미는 부담스러워 미칠 것 같았지만 울고 있는 오이카와 때문에 참았다. 어차피 자신은 어렸을 때부터 오이카와 때문에 남들의 시선을 받는 데에는 이골이 났으니까 금방 적응될 거라고 생각하다 이와이즈미는 웃었다.

 

 “오이카와, 여전하네. 어렸을 때부터 너 때문에 온갖 시선이란 시선은 다 받고. 난 네 뒤치다꺼리 하려고 태어났나 보다. 오늘도 봐. 이거 어떻게 수습할 거야.”

 

 이와이즈미는 우느라 못나진 오이카와의 얼굴이 팬들에게 찍힐까봐 손으로 그 얼굴을 정리해 주었다. 그러자 오이카와는 점차 울음을 그쳐갔다. 그러자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에게 눈을 맞추며 말했다.

 

 “그 날은 내가 잘못했어. 너무 갑작스러워서. 말이 좀 헛나갔어. 그러니까 용서해 주라. 연락 안 한 것도 내가 미안해. 나는 네가 내 연락 같은 건 싫어할까봐 차마 못했어. 어렸을 때 내가 없음 울던 네가 나 없어도 다른 사람들이랑 잘 지내길래, 너한테 내가 더 이상 필요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 오이카와, 늦어서 정말 미안하다.”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를 끌어안고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오이카와의 생일을 축하하려고 준비한 팬 미팅은 오이카와의 울음으로 예상보다 일찍 마치게 되었다. 게스트로 온 동료들에게 연신 미안하다고 고개를 숙인 오이카와에게 그들은 괜찮다며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좋은 시간 보내라며 사라졌고, 스태프들도 무대를 정리하며 이번 팬 미팅으로 친구를 만나서 다행이라며 오이카와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오이카와는 연신 감사하다고 인사하며 대기실로 가서 옷을 갈아입고 엉망이 된 얼굴을 정리해서 나왔다. 공룡 인형을 이와이즈미에게 떠밀며 오이카와는 배고프니까 얼른 밥 먹으러 가자고 말했다.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의 매니저에게 인사를 하고는 오이카와를 따라 공연장을 나섰다.

 

 이와이즈미는 편의점에서 맥주 두 캔과 약간의 안주거리를 사서 오이카와가 기다리는 곳으로 향했다. 강가에 놓인 벤치는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지나가는 사람도 없어서 한산했다. 게다가 수풀에 살짝 가려져 지나가는 사람에게는 잘 보이지 않는 곳이라 지금의 오이카와와 이와이즈미에게는 안성맞춤인 자리였다. 이와이즈미가 봉지를 들고 오이카와의 옆에 앉았다. 혹시 모를 상황 때문에 후드를 쓰고 있는 오이카와는 맥주를 보며 활짝 웃었다.

 

 “내가 아니라 맥주를 기다렸네.”

 

 “아니야, 이와쨩. 이와쨩이 들고 오는 맥주를 기다렸다구!”

 

 “거짓말. 됐고, 얼른 마시자.”

 

 이와이즈미는 안주로 먹을 오징어 포장을 뜯어 오이카와의 옆에 두었다. 그리고 오이카와는 맥주 캔을 따서 그 옆에 내려놓았다. 두 사람은 간단히 건배를 하고는 도시의 불빛을 반사하며 빛나는 강을 바라보며 맥주를 마셨다. 그리고 이와이즈미는 오징어 조각을 입에 넣고 씹었다. 이제야 완전해진 기분이 들었다. 웃음이 나왔다. 왜 이렇게 늦게 돌아 왔을까. 괜히 겁먹어서 연락도 못했던 자신이 바보 같았다.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가 웃자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이와이즈미도 고개를 돌려 오이카와를 바라보았다.

 

 “오이카와, 사랑해.”

 

 오이카와의 커진 눈이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이와이즈미는 여전히 웃음을 띤 채로 오이카와의 볼을 감싸고 천천히 입을 맞추었다. 감았던 눈을 살짝 뜨자 오이카와도 눈을 감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래서 이와이즈미는 고개를 틀어 오이카와의 입속을 파고들었다. 몇 번 혀가 얽혀 들고 이와이즈미는 입술을 뗐다. 오이카와의 얼굴은 다시 눈물범벅이었다. 이와이즈미는 눈가를 두 손으로 닦아주며 다시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몇 번을 말해도 모자라네. 늦어서 미안해, 오이카와. 다시 같이 살자. 늦은 만큼 내가 앞으로 더 잘할게.”

 

오이카와는 퉁퉁 부은 얼굴로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였다. 이와이즈미는 다시 눈물을 흘리는 오이카와를 꽉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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