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장편/LOVE HOUSE

[우시오이] LOVE HOUSE 02

 그 후로 며칠 뒤, 오이카와는 휴대폰을 들었다. 그리고 짧게 문자를 쳤다. 곧 부르르 휴대폰이 떨리더니 화면에 불이 들어왔다. 지금 가겠다. 라니 빠르기도 하지. 오이카와는 우시지마의 답장을 보며 웃었다. 그리고 보던 서류를 들어 다시 검토하기 시작했다. 곧 초인종이 울렸다. 오이카와는 종이를 내려놓고 문을 열어주었다.

 

 “안녕, 우시와카쨩.”

 

 “? 오이카와, 그렇게 부르는 건 삼가주길 바란다.”

 

 “? 어떻게 부르든 그건 내 마음이지.”

 

 오이카와는 살짝 비켜주며 우시지마가 들어올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 주었다. 우시지마는 잠시 묵묵히 서 있다가 집 안으로 들어갔다.

 

 “실례하겠다.”

 

 “당분간 우시와카쨩 집이기도 한데 그런 말은 넣어둬. 따라와, 방 가르쳐 줄게.”

 

 오이카와는 우시지마가 머물 방으로 향했다. 우시지마는 두리번거리며 집을 살펴보았다. 집은 깔끔했다. 너무 깔끔해서 휑할 정도였다. 우시지마는 꼼꼼히 내부를 살펴보다가 오이카와가 방문 앞에서 자신을 쳐다보고 있자 그제야 방으로 발을 옮겼다. 방에 들어간 우시지마는 잠시 가만히 서 있다가 책상에 들고 온 가방을 얹어 두었다. 오이카와는 제 방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는지 우시지마가 하는 행동을 문에 기댄 채로 지켜보았다. 우시지마는 가방에서 옷가지를 꺼내 옷장에 넣은 다음 각종 필기구와 노트를 꺼내 책상에 연결된 책장에 꼽았다. 그리고 노트북을 꺼내 충전기를 꼽았다.

 

 “뭐야, 건축가의 짐이래서 기대했는데. 별거 없잖아?”

 

 “그야 요즘엔 대부분 컴퓨터로 하니 옛날처럼 짐을 잔뜩 들고 다니지 않는다. 편해졌지.”

 

 “, 그래? 아쉽네. 나 제도하는 거 보고 싶었는데.”

 

 “다음에 사무실에 들를 일이 있다면 보여주도록 하지.”

 

 “기대할게. 저녁은 먹었어?”

 

 “. 아직 못 먹었다.”

 

 “잘됐네, 잠시만 기다려. 차려줄게.”

 

 “가사도우미를 쓰지 않는 것인가? 너 정도라면 상주 가사도우미가 있을 줄 알았는데.”

 

 “불편해서. 그냥 내가 하는 게 편해.”

 

 오이카와는 미묘하게 굳은 얼굴로 몸을 돌리더니 주방으로 향했다. 우시지마는 그런 오이카와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짐을 마저 풀었다.

 

 미안하군, 설거지는 내가 하지.”

 

 “그럴래? 잘됐다. 안 그래도 봐야하는 서류가 있었거든.”

 

 우시지마는 정갈하게 차려진 식탁을 바라보며 속으로 조금 감탄했다. 오이카와는 제법 집안일을 잘 하는 편인 것 같았다. 우시지마는 의자를 꺼내 자리에 앉았고 오이카와도 그 맞은편에 앉았다. 한참 조용히 밥을 먹던 중 오이카와가 문득 말을 걸었다.

 

 “맞아, 우시와카쨩, 24시간 붙어있게 해 달랬던가? 나 내일 아침 7시에 출근이야. 정장 챙겨왔지? 어차피 나 비서 있으니까 그냥 옆에서 따라다니기만 해. 딱히 일은 안 시킬 거야.”

 

 우시지마는 오이카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침 7시 출근이라니 얼마 전까지 대형 프로젝트 때문에 밤을 자주 샜던 우시지마는 절로 한숨이 나왔지만 군말하지 않았다. 본인이 선택한 걸 어쩌겠는가.

 

 “오이카와, 늦었잖아!”

 

 새카만 정장을 차려 입은 남자가 오이카와에게 화를 내며 차문을 열어 주었다. 우시지마는 멀뚱히 서서 조수석에 타기 위해 기다렸다. 그러자 오이카와가 문을 닫으려는 이와이즈미를 제지하고는 우시지마에게 말했다.

 

 “뭐해? 안타고.”

 

 “옆자리에 앉아도 되는가?”

 

 “그건 또 무슨 바보 같은 질문이야? 얼른 타, 늦었어.”

 

 우시지마는 자신을 쳐다보는 네 개의 눈동자에 얼른 차에 올라탔다. 문을 닫은 이와이즈미가 곧 운전석에 올라타고 차는 부드럽게 출발했다.

 “날 알아야 내가 원하는 디자인이 나온댔지? 소개할게, 내 비서이자 소꿉친구인 이와이즈미 하지메야. 나와 가장 오래 붙어 있지. 이와쨩, 건축디자이너 우시지마 와카토시. 한동안 같이 다닐 테니 둘이 친하게 지내!”

 

 “잘 부탁드립니다.”

 

 “, 저도 잘 부탁드려요.”

 

 이와이즈미와 우시지마는 백미러를 통해 눈을 맞추며 인사했다. 오이카와는 그런 두 사람을 보고 웃고는 태블릿 PC를 보았다. 오늘 회의할 자료로 미리 숙지해 두는 편이 좋기에 오이카와는 잠시 집중해서 문서를 읽었다.

 

 “미안하지만 회의장에는 같이 못 들어가.”

 

 "그 정도는 알고 있다. 밖에서 기다리도록 하지.”

 

 회의장 문이 닫히고 우시지마는 거대한 복도에 홀로 남았다. 잠시 닫힌 문을 바라보다가 우시지마는 복도에 위치한 의자에 앉았다. 우시지마는 폰을 꺼내서 간단한 스케치를 하기 시작했다. 가구가 가득 차 있음에도 황량했던 오피스텔. 집을 보면 단적으로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우시지마는 오이카와의 집을 본 순간 왜 오이카와가 그런 의뢰를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집에 들어와도 편하지 않고 제 집이란 생각이 들지 않을 만 했다. 우시지마는 오이카와에게 좀 더 따뜻한 집을 주고 싶었다. 그러려면. 우선 사무실과 집이 분리되어야겠지. 우시지마는 간단한 콘셉트를 몇 개 잡아 스케치한 뒤 메모로 저장했다.

 

 몇 십분 뒤, 오이카와는 잔뜩 지친 얼굴로 회의장에서 나왔다. 우시지마는 오이카와가 보이자마자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이와이즈미가 건네는 물을 마시다가 우시지마를 발견하고는 손을 들어 인사했다.

 

 “미안, 어쩌다 보니 회의가 좀 길어졌네. 우리 늦은 아침이나 먹을까? 속이 시커먼 영감들을 상대했더니 배가 고파.”

 

 “늘 가던 곳으로?”

 

 “, 부탁할게, 이와쨩.”

 

 “알겠어. 차 준비해놓을 테니 밑으로 내려와.”

 

 오이카와는 멀어지는 이와이즈미를 보다가 우시지마 쪽으로 몸을 돌렸다.

 

 “맞아, 나 회의하던 도중에 궁금한 게 생겼어.”

 

 “뭔지는 몰라도 가능한 대답해 주겠다.”

 

 “우시와카쨩은 왜 건축 쪽으로 진로를 선택했어? 다른 것도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아버지가 건축가셨다.”

 

 “그게 다야...?”

 

 “어렸을 때, 아버지가 일하시는 걸 본 적이 있다. 행복해 보이셨지.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쪽으로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일을 하다 보니 재미를 느껴 지금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다.”

 

 “아버지라...”

 

 오이카와는 잠시 생각에 빠진 듯 우시지마와 시선이 어긋났다. 우시지마는 대화를 이어나가기 위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네 부모님은 외국에 계시나? 저번에 얼핏 출국 기사를 본 것 같은데.”

 

 “. 외국 지사에서 일하고 계셔. 여긴 할아버지랑 내가 맡고 있고.”

 

 “언제부터 혼자 살았지?”

 

 “어디보자. 언제부터라고 해야 하나? 계속 늘 혼자였던 것 같은데. , 본가에서 나와서 살기 시작한 건 5년 정도 됐어.”

 

 우시지마는 오이카와와의 대화 속에서 얼핏 그의 어린 시절을 예측할 수 있었다. 3대 독자라고 했으니 형제도 없었을 테고 주변 친척들은 모두 적이었겠지. 우시지마는 문득 자신의 유년기를 떠올렸다가 발걸음을 옮기는 오이카와를 보곤 머릿속에서 지웠다. 앞서 걸어가는 오이카와의 등이 단단한 것 같으면서도 외롭고, 쓸쓸해 보였다.

 

 “차 대고 갈 테니 먼저 주문하고 있어, 오이카와.”

 

 “알겠어, 아메리카노 한 잔이랑 베이글이면 되지?”

 

 “.”

 

 오이카와가 자주 방문하는 카페로 보이는 가게에 도착했다. 우시지마는 카페에 들어서자 습관적으로 내부를 훑었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인테리어 스타일로 꾸며진 카페 내부는 꽤 세련돼 보였다. 오이카와와 우시지마는 주문을 한 후 4인용 테이블로 가서 앉았다.

 

 “, 내 집에 꼭 들어갔으면 하는 게 있어.”

 

 “뭔가.”

 

 우시지마는 습관적으로 폰에서 메모 어플리케이션을 작동시켰다. 그 모습을 본 오이카와는 소리 내 웃고는 마저 말을 이었다.

 

 “저기 보이는 아일랜드 식탁!”

 

 “저 고동색 말인가?”

 

 “, 저거. 예쁘지 않아? 저기서 간단하게 차를 마셔도 좋고 바처럼 술을 마셔도 좋을 것 같아.”

 

 “메모해 두도록 하지. 그러고 보니 오이카와. 가장 중요한 걸 물어보지 않았다.”

 

 “뭔데?”

 

 “어디에 주택을 지을 건가? 대지분석을 좀 하고 싶다.”

 

 “, 진짜 제일 중요한 걸 깜빡했네. . 오늘 스케줄이 어떻게 되더라?”

 

 “오후 4시쯤이면 중요한 건 다 끝나.”

 

 차를 주차하고 어느새 자리로 온 이와이즈미가 오이카와의 말을 듣고 대답해주며 그 옆자리에 앉았다.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의 대답에 반색하며 말했다.

 

 “그래? 그럼 일 끝나고 가면 되겠네. 내 집에서 그렇게 멀진 않거든.”

 

 오이카와의 말이 끝나자마자 테이블 위에 얹어 둔 진동벨이 울렸다. 우시지마가 일어나려고 하자 손을 들어 제지하고는 오이카와는 트레이를 가지러 갔다. 스스로 하는 게 익숙해 보이는 오이카와를 보며 우시지마는 또 다시 의외란 생각을 했다.

 

 “오이카와는 어렸을 때부터 자립심이 강했습니다. 자신의 어깨를 짓누르는 주변의 기대를 알기라도 했는지 7살짜리가 스스로 모든 것을 하려고 애썼죠. 저는 빈틈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 애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아님 그냥 남의 손을 타는 걸 싫어해서 일수도 있지만요.”

 

 트레이를 건네받는 오이카와의 등을 보는 이와이즈미가 우시지마에게 혼잣말 하듯이 말했다. 우시지마는 이와이즈미의 말이 끝나자 이쪽으로 걸어오는 오이카와를 힐끔 바라 보았다. 이와이즈미가 왜 자신에게 이런 이야기까지 하는지 의문을 가진 우시지마는 오이카와가 자리에 앉자 그의 메뉴를 보았다. 스노우 파우더가 올라간 부드러워 보이는 빵과 에스프레소 더블 샷이었다. 그리고 이와이즈미와 우시지마는 기본세트인 베이글과 아메리카노.

 

 "맛있어 보여? 내 거 먹어볼래?"

 

 우시지마가 자신의 빵을 쳐다보는 게 느껴졌는지 오이카와가 접시를 우시지마 쪽으로 밀었다. 우시지마가 고개를 끄덕이자 오이카와는 기뻐하며 빵을 잘라 우시지마의 접시에 올려주었다.

 

 "!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거야. 우유빵!"

 

 이와이즈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자신의 베이글을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예전에 오이카와를 따라 시켜봤다가 너무 달아서 식겁한 적이 있기에. 오이카와는 눈을 빛내며 우시지마가 먹는 모습을 보았고 우시지마는 그 기대가 부담스럽다고 생각하며 포크로 빵조각을 푹 찔러 입 안에 넣었다. 크림과 부드러운 빵이 입 안에서 살살 녹는 것 같았다. 그리고 혀를 마비시킬 것 같은 단맛. 뭐라고 해야 할까. 마치,

 

 "꿈 같은 맛이지?"

 

 오이카와가 다 안다는 듯 턱을 괴고 웃으며 말했다. 우시지마는 고개를 끄덕였고 이와이즈미는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다시 한 번 고개를 저었다. 오이카와는 우시지마가 아직도 꿈에서 못 헤어 나온 것 같은 표정을 짓자 자신의 커피를 그에게 내밀었다.

 

 ", 현실로 돌아 올 쓰디 쓴 독주."

 

 우시지마는 홀린 듯이 손을 들어 커피를 받았다. 새카만 에스프레소가 그의 말처럼 독으로 보였다. 그리고 한 모금. 우시지마는 천천히 마비됐던 신경들이 돌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이 집 우유빵은 내가 어렸을 때부터 먹었던 거야. 늘 이걸 먹을 때 마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인 것 같은 환상에 빠졌어."

 

오이카와는 빵을 나이프로 썰어서 입에 넣었다. 지독한 단맛과 함께 웃음이 절로 나왔다. 어렸을 때 처음 맛 본 달콤함. 잊을 수 없는 그 맛에 오이카와는 사정해서 그 레시피를 얻어 냈다. 하지만 아무리 실력 있는 사람도 그와 같은 맛을 만들어 내지 못하자 어쩔 수 없이 오이카와는 매일매일 없는 시간을 쪼개 그 가게까지 가서 빵을 사 먹었다. 하지만 연세가 많은 제빵사는 오이카와가 성년이 된 해에 돌아가셨다.

 

"그럼 이 가게는...?"

 

오이카와의 이야기를 듣던 우시지마가 방금 먹은 빵을 바라보며 물었다. 오이카와는 그 말에 뒤를 돌아 계산대에 있는 남자에게 손을 흔들었다. 주문을 받던 남자는 그를 보곤 손을 한 번 든 뒤,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넘기고 이쪽으로 걸어왔다.

 

"그 분의 손자야. 맛키. 하나마키 타카히로. 정말 다행이었지, 맛키가 그 맛을 재현할 수 있어서!"

 

"오이카와, 오랜만이네. 이와이즈미도."

 

어느새 테이블로 온 하나마키는 오이카와 맞은편에 앉은 우시지마를 힐끔 쳐다보고는 오이카와와 이와이즈미에게 인사했다. 이와이즈미는 간단하게 악수를 한 뒤 급한 일이라도 있는지 휴대폰 화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하나마키는 그런 이와이즈미가 익숙한 듯, 자신에게 말을 거는 오이카와에게 시선을 돌렸다.

 

", 잘 지냈어? 자주 오고 싶었는데 회사 일이 바빠서 말야. 그래도 저번에 포장해서 보내준 덕분에 살았어!"

 

"다행이네. , 그럼 잘 먹다 가라. 주문이 밀려서 이만 가야겠다."

 

", 다음에 봐-."

 

하나마키의 뒷모습에 손을 흔들어 준 오이카와는 다시 몸을 바로 했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조각을 입에 넣었다.

 

"이와쨩, 이제 가야 하는 거지?"

 

", D건설과 미팅이 있어."

 

이와이즈미는 휴대폰에서 눈을 뗀 뒤 우시지마를 바라보았다. 오이카와는 그런 이와이즈미를 보고는 우시지마에게 말했다.

 

"이와쨩이 미팅 때 좀 도와줬음 좋겠대."

 

'중·장편 > LOVE HOUS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시오이] LOVE HOUSE 03  (0) 2016.08.23
[우시오이] LOVE HOUSE 01  (0) 2016.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