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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장편/LOVE HOUSE

[우시오이] LOVE HOUSE 03

 우시지마는 오이카와의 말에 의문스럽다는 얼굴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오이카와가 턱을 괴고 창밖을 바라보았고 이와이즈미는 그의 어깨를 손으로 툭 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 대기시켜 놓고 있을 테니 얼른 나와라.”

 

 “알겠어.”

 

 가게를 나가는 이와이즈미에게 손을 흔들어 준 오이카와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입을 열었다.

 

 “이상하게 D건설이랑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면 자주 허공으로 사라지는 돈들이 생겨. 그래서 말인데, 우시와카쨩이 옆에 있다가 그쪽이 부르는 견적이 제대로 책정된 건지 좀 봐 줘.”

 

 “그 정도라면 도와줄 수 있다. 대신 우리 회사에서 견적 내는 방식을 기준으로 해도 되나?”

 

 “물론이지. 그냥 오차범위를 벗어나는 걸 이야기해 주면 돼.”

 

 “좋다.”

 

 “우시와카쨩 덕분에 한시름 덜었어! 그럼 난 가서 손 좀 씻고 올게.”

 

 오이카와가 화장실로 사라지자 우시지마는 남은 커피를 들이켰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두었던 휴대폰에서 불빛이 깜빡이는 걸 확인하곤 화면을 켰다. 시라부에게 연락이 와 있었다.

 

 [괜찮으신가요?]

 

 우시지마는 잠시 화면을 바라보다가 짧게 답장했다.

 

 [괜찮다.]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은 우시지마는 화장실에서 나오는 오이카와를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트레이를 들려고 하자 오이카와가 우시지마를 저지하고는 자신이 직접 카운터에 갖다 주었다.

 

 “----해서 저희 회사가 계산한 견적가는 ---천정도 됩니다.”

 

 D건설 회사 직원이 자료에 적힌 견적에 대한 세부적인 설명을 마치자 오이카와는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몇 번 톡톡 쳤다. 아무리 생각해도 좀 높게 책정된 견적인데 어디에다 돈을 더 갖다 붙였는지 모르겠단 말이지. 턱을 괸 채로 오이카와가 아무 말이 없다가 우시지마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우시지마 씨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가 뭐라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견적에 좀 의문스러운 부분이 있군요. D건설 회사 정도라면 좀 더 싼 가격에 자재를 구입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공기가 좀 긴 것 같습니다. 빨리한다고 좋을 것도 없지만 그래도 넉넉하게 잡은 공사기간에서 거의 6개월 정도가 더 추가된 것 같은데, 인건비 등을 고려한다면 공기를 다시 고려해 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추궁하진 않겠습니다. 다시 견적을 내서 나흘 뒤에 뵙죠.”

 

 오이카와는 입 꼬리를 당겨 미소를 지으며 당황하는 D사 직원을 보았다. 우리가 등신같이 계속 돈을 떼먹힐 줄 알았어? 기분이 좋아진 오이카와는 우시지마를 힐끔 쳐다보고 생각했다. 생각보다 쓸 데가 많네.

 

 우시지마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소파에 앉아 머리를 등받이에 기댔다. 자신이 일이 많을 때를 비교하면 그리 힘든 일은 아니지만 몇 달 몰아서 일하다가 또 몇 달 쉬는 패턴의 건축가 일을 생각하면 매일 이렇게 생활하는 건 무리라고 우시지마는 생각했다. 게다가 그는 몇 주 전에 대형 프로젝트를 끝내서 제대로 쉬지도 못했기에 온몸이 휴식을 달라고 시위하는 것 같았다. 넥타이를 풀던 오이카와는 축 늘어진 우시지마를 보며 웃었다. 우시지마는 실눈을 떠 오이카와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이 오이카와에게 왜 웃는지 묻고 있었다.

 

 “너한테서 그런 모습을 볼 줄 몰랐어. 항상 강직한 소나무처럼 제 자리에 서있을 줄 알았는데. 너 같은 사람도 지치는 구나.”

 

 “당연한 거 아닌가. 게다가 얼마 전에 프로젝트 하나를 끝냈더니 더 힘 든 것 같다.”

 

 “그래? 그럼, 어디 보자. , 여기 있네. 우리 이거라도 마시고 푹 자자고. 내일은 좀 더 여유로울 예정이니까 한두 잔 정도는 괜찮아.”

 

 오이카와가 진열돼 있던 술병 중 하나를 들고 살짝 흔들어 보였다.

 

 “내일은 몇 시 출근인가.”

 

 “내일은. 아마 점심식사 밖에 없을 거야. 그러고 보니 오늘 갑자기 일이 생기는 바람에 집터도 못 보여줬네. 내일 오전에 같이 가자.”

 

 우시지마는 대답할 기력도 없는지 눈을 감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이카와는 그 모습에 웃으며 술병을 내려놓고는 재킷을 벗어 팔에 걸쳤다.

 

 “그럼 씻고 올게. 너도 씻든가 아님 좀 쉬고 있어.”

 

 문이 닫히는 소리가 멀게 느껴진다고 생각하며 우시지마는 수마에 빠져들었다. 그러다 어디선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시지마는 그 목소리에 홀린 듯이 정신을 차리며 멀어지는 목소리의 주인을 잡기 위해 손을 뻗어 잡히는 것을 강하게 끌어 당겼다. 그리고 눈을 뜨자.

 

 “우시와카쨩. 좀 놔 줄래?”

 

 우시지마는 제 코앞에서 인상을 쓰고 있는 오이카와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눈동자가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이 시선을 끌었다. 그리고 그 눈을 덮는 긴 속눈썹. 코끝에서 느껴지는 향긋한 향기. 꿈에 취한 것 같았다. 그러나 그 꿈도 오이카와가 우시지마의 어깨를 밀치며 자신에게서 멀어지자 끝이 났다.

 

 “잠 덜 깼어? 많이 피곤하면 그냥 들어가서 자.”

 

 “아니, 좀 잤더니 괜찮아 졌다. 나도 좀 씻고 오지. 먼저 마시고 있어라.”

 

 “빨리 씻고 와.”

 

 오이카와는 툴툴거리며 흐트러진 샤워가운을 매만지고는 소파에 앉아 잔에 술을 따랐다. 우시지마는 화장실로 가서 옷을 벗고 물을 틀었다. 뜨거운 물이 몸을 적시자 긴장이 풀리는 것 같았다. 샤워를 하는 내내 우시지마는 가까이서 본 오이카와의 얼굴이 계속 떠올라 고개를 저었다.

 

 “. 오이카와, 미안한데 옷을 안 가지고 왔다.”

 

 화장실 문을 빼꼼히 연 우시지마가 오이카와를 불렀다. 그러자 오이카와가 소파에 등을 기대곤 다리를 꼬며 말했다.

 

 “내가 옷 가져다주면 소원 하나 들어주나?”

 

 우시지마는 망설였다. 그리고 왠지 오이카와에게 책잡히면 안 될 것 같단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 우시지마는 한숨을 쉬고는 수건을 꺼내 허리에 묶은 뒤 입고 들어온 옷을 챙겨들었다. 갑자기 문을 열고 우시지마가 나오자 도리어 놀란 것은 오이카와였다. 몸 진짜 끝내주네. 오이카와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우시지마는 그대로 휘적휘적 제 방으로 들어가더니 옷을 입고 나왔다.

 

 “안 취해서 다행이군.”

 

 “당연하지. 이런 걸론 취하지도 않아.”

 

 “술에 센가 보군.”

 

 “오이카와씨는 부족하거나 나약한 점 하나 없이 퍼팩트 하거든.”

 

 우시지마는 오이카와의 근거 없는 자신감에 저도 모르게 픽하고 웃었다. 오이카와는 자신을 비웃은 우시지마가 괘씸했지만 또 그런 모습이 나쁘지 않아서 조용히 술잔을 넘겼다.

 

 “안 믿기면 내기해볼래?”

 

 “내일은 평일이니 다음으로 미루도록 하지.”

 

 “좋아, 승부는 다음에 겨루자.”

 

 쨍. 잔이 가볍게 부딪히고 두 사람은 술잔을 단숨에 비웠다. 깊은 밤이 될 때까지 그들은 잔을 채우고 또 비웠다.

 

 “아침을 간단하게 준비해 보았다.”

 

 오이카와는 아침에 일어나서 간단하게 씻은 뒤 아침준비를 위해 주방으로 갔다가 놀랐다. 우시지마가 안 어울리는 앞치마를 하고선 계란을 굽고 있었기에. 잠시 눈을 깜빡이던 오이카와는 식탁 위에 노릇하게 구워진 토스트를 보며 냉장고를 열었다.

 

 “무슨 잼 좋아해?”

 

 “아까 얼핏 보니까 살구 잼이 있던 것 같던데 그걸로 부탁한다.”

 

 오이카와는 종류별로 잼이 정리된 칸을 보며 병을 고르다가 잠시 손을 멈추었다. 그리고 살구 잼이 든 병을 들어 뚜껑을 잠시 만진 오이카와는 식탁 위에 병을 둔 뒤 커피 메이커 앞에 섰다.

 

 “커피는?”

 

 “오렌지를 갈아 놨으니 그걸 마시면 된다.”

 

 우시지마는 계란을 접시에 얹곤 오이카와를 끌어 당겨 식탁 의자 앞에 세웠다. 그리고 프라이팬을 가스레인지 위에 둔 뒤, 자신도 그 맞은편 의자 앞으로 가서 섰다.

 

 “뭐하지? 안 앉고.”

 

 “? . 좀 어색해서.”

 

 “얼른 밥 먹고 땅을 보러 가지.”

 

 “그래.”

 

 오이카와가 의자에 앉자 우시지마도 곧 뒤따라 앉았다. 그리고 직접 갈아서 만든 오렌지 주스를 각자의 잔에 따라준 뒤 우시지마는 잼 뚜껑을 열었다. 살구의 단내가 코를 자극하자 우시지마는 희미하게 웃었다.

 

 “내가 어렸을 때, 이맘때쯤 늘 할머님께선 살구 잼을 만드셨다. 그래서 이 잼만 보면 그때가 떠올라.”

 

 “신기하네, 우리 엄마도 늘 살구가 나오기 시작하면 잼으로 만드셨는데. 너무 옛날이라 엄마가 해준 게 어떤 맛이었는지도 잘 기억 안 나네.”

 

 오이카와는 쓰게 웃었다. 그리고 우시지마에게 병을 건네받아 토스트에 주홍빛 잼을 얹었다. 단내를 맡자 살며시 엄마가 잼을 만들 때 맡았던 냄새가 떠오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는 오늘 방문할 곳을 생각하자 달아야 할 잼의 끝 맛이 약간 씁쓸하다고 생각하며 잼 바른 토스트를 씹었다.

 

 “, 잠시만 기다려 봐. 이와쨩한테 차 좀 대기시켜 달라고-”

 

 “아니, 오늘은 둘만 가도록 하지.”

 

 “? ?”

 

 “그도 간만에 여유로운 날일 텐데 굳이 불러내야 할 필요가 없지 않나. 운전을 못한다면 내가 하겠다.”

 

 “길도 모르잖아.”

 

 “내비게이션이 있으니 괜찮다.”

 

 “됐어, 내가 운전 할게.”

 

 오이카와는 거실 테이블 서랍 어딘가에 던져놓았던 차키를 찾아내고는 현관으로 향했다. 우시지마도 휴대폰과 카메라를 챙긴 뒤 그를 따라 나섰다.

 

 달리는 차 안에선 두 사람은 모두 아무 말이 없었다. 오이카와는 라디오를 틀까 잠시 생각하다가 말았다. 시끄러운 건 질색이다. 그리고 곧 이 모퉁이만 돌면 도착이기에 그냥 입을 꾹 다물고 핸들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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