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장편/LOVE HOUSE

[우시오이] LOVE HOUSE 01

 오이카와 토오루, A 그룹의 3대 독자로 차기 회장으로 추앙받는 이다. 현재 회사는 밀려들어오는 일 때문에 한창 바쁠 시기이지만 오이카와는 제멋대로 회사를 박차고 나왔다. 그리고 그는 어떤 건물 앞에 서있는 중이다. 시라토리자와 건축 사무소. 흰 새의 못이라니. 이름도 참 고상하지. 오이카와는 간판에 적힌 이름을 보고 비웃곤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접어 재킷의 가슴 포켓에 꼽은 뒤 계단을 올라갔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사무실은 그 이름처럼 깔끔했다. 두리번거리며 내부를 훑어 본 오이카와는 속으로 일단 분위기는 합격이라고 멋대로 점수를 매긴 뒤, 제 눈앞의 소파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사무실에 있던 사람들은 갑자기 들어와 마치 제 사무실처럼 둘러보더니 자연스럽게 앉는 오이카와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뭐야, 여기 서비스가 왜 이래? 손님이 왔으면 빨리빨리 대응해야 하는 거 아냐?”

 

 혼잣말인지 아님 행동이 느린 직원들을 질책하는지 오이카와는 제법 큰 목소리로 말하고는 전시된 건축물 모형들을 바라보았다. 가장 빨리 정신을 차린 시라부가 커피를 준비해서 오이카와의 앞에 내려놓았고 고시키의 등을 떠밀었다. 흠칫거린 고시키는 뻣뻣한 걸음으로 오이카와의 맞은편에 앉았다.

 

 “, 어서 오세요. , 어떤 건물을 원하셔서 오셨습니까?”

 

 “주택. 내가 지금 사는 곳이 질려서 말야. . 2층 정도가 적당하겠어.”

 

 “, 2층짜리 전원주택이요? 혼자 사실건가요?”

 

 “, 나 혼자. 그건 왜?”

 

 “거주 인원수에 따라 구성이 좀 달라지거든. 그래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니 좀 여유롭게 잡는 게 좋겠군요.”

 

 “, 마음대로 해.”

 

 고시키는 들고 있는 상담지에 들은 내용들을 메모하고는 다음으로 채워야 하는 칸을 바라보았다.

 

 “그럼, 어디보자. , 대충이라도 원하시는 스타일을 말씀해 주시겠어요? 예를 들어 중정이라거나 특별히 원하는 방이라거나. 무엇이든 괜찮습니다.”

 

 “, 일을 끝내고 집에 딱 들어섰을 때 편안하단 생각이 들면 좋겠어.”

 

 “...?”

 

 “그리고 들어가자마자 내 집이다라고 확실하게 느껴지면 더 좋고.”

 

 오이카와의 말이 끝나자마자 사무실내의 직원들은 모두 직감했다. , 이 클라이언트를 맡으면 수백 번 도안을 바꿔야 할 거야. 고시키는 난이도 최상의 요구에 머릿속이 하얘지는 걸 느꼈다. 간신히 정신을 잡은 그는 진땀을 닦으며 다시 물었다.

 

 “, 그 외에 좀 더 원하시는 건 없나요...? 좀 더 생각하고 계시는 집을 묘사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묘사가 어려우신 거라면 저희가 여태까지 설계한 모형들을 보시면서 괜찮다고 생각해 주시는 부분을 말씀해 주셔도 되요.”

 

 “없어.”

 

 “?”

 

 “그 외에는 딱히 없어. 그리고 저기 있는 모형들 아까 다 훑어봤는데 마음에 드는 것도없고.”

 

 분명 적정온도로 맞춰놨는데도 다들 왠지 서늘하다고 느꼈다. 아니, 우리 포트폴리오가 마음에 안 드는데 여긴 왜 왔대? 모두 머릿속에서 동시에 떠올린 말이었다. 특히 오이카와를 직접 대면하고 있던 고시키는 울기 일보직전이었다. 우시지마 씨처럼 클라이언트들이 원하는 건물을 정확하게 제시하고 디자인하고 싶은데 이번 클라이언트는 도통 협조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고시키는 할 말을 못 찾은 채로 입만 달싹이며 좌절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

 

 “다들 집 잘 지키고 있었어?”

 

 시끄러운 목소리와 함께 사무실 문이 벌컥 열리고 텐도가 들어왔다. 텐도는 사무실 문을 열자 느껴지는 서늘함과 간절함에 의아해 하다가 고시키 앞에 앉아있는 사람을 보고 사무실 공기가 무거운 이유를 찾았다. 아하, 또 어려운 걸 부탁한 손님이 왔나보네.

 

 “와카토시, 손님 왔다!”

 

 텐도는 뒤를 돌아 천천히 계단을 올라오고 있는 우시지마에게 외쳤다. 우시지마는 텐도의 눈을 보고 짐작했다. 재밌을 것 같은 손님이 왔나보군. 우시지마가 사무실에 들어서자 직원들은 모두 구원자의 손길을 바라는 듯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시라부가 우시지마의 옆에 와서 가방을 받아들며 그를 반겼다.

 

 “어서 오세요, 출장은 어떠셨나요?”

 

 “잘 해결됐어.”

 

 우시지마는 불편한 정장 재킷을 벗고 넥타이를 살짝 헐렁하게 한 뒤 고시키에게 걸어갔다. 울상인 고시키에게 상담용지를 건네받고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내가 하지. 가서 다른 일 봐.”

 

 우시지마가 등장하자 모든 신경이 클라이언트에게 모였던 직원들은 전부 자신의 일로 관심을 돌렸다. 오이카와는 달라진 사무실 공기에 다리를 바꿔 꼬았다. 우시지마는 재빨리 고시키가 작성한 서류를 훑었지만 딱히 적힌 것이 없어 서류에서 시선을 떼고는 오이카와를 바라보았다.

 

 “죄송합니다만 어떤 건물을 원하시는지 다시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좋아. 당신은 내가 원하는 대로 디자인해 줄 수 있을 것 같으니까 다시 말해 줄게. 내 집이 필요해. 지금 오피스텔에 사는데 마음에 안 들어서 옮기고 싶어. 오피스텔처럼 공장에서 찍어낸 것 같은 집 말고 딱 들어섰을 때 집이란 생각에 안도감이 들고 모든 긴장이 풀리는 그런 집이면 좋겠어. 내 집이란 확신이 드는 그런 집말이야.”

 

 우시지마는 오이카와의 말이 끝나자 눈썹을 씰룩였다. 여태까지 추상적인 설명을 하는 클라이언트들을 많이 만나왔지만 그래도 나름의 묘사는 해왔다. 그림 같은 집을 갖고 싶다거나 어떤, 어떤 방이 필요하다거나. 물론 그런 것들도 형편없는 설명이었지만. 그래도 지금 이 사람보단 나았다. 우시지마는 아까 다른 직원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이 클라이언트는 자신들이 어떤 결과를 내놓더라도 만족하지 않을 거란 걸 예감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의뢰를 거절하려는 순간 오이카와가 피곤한 얼굴로 먼저 말을 가로챘다.

 

 “여기가 마지막이야. 여태까지 여러 사무소를 전전했지만 전부 거절했어. 아니,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집을 현실에서 실현시켜 주는 게 당신, 건축가들 아냐? 왜 다들 내 의뢰를 피하지? 물론, 내가 묘사를 좀 잘 못한다는 건 알아. 근데 내가 갖고 싶은 집을 설명하라고 하면 나도 그런 말 밖에 안 떠오르는 걸 어떡하라고? 다들 실력이 없으니까 그런 거지! 그 쪽도 거절할 거라면 빨리 말해. 그럼 깔끔하게 포기하고 나갈 테니까.”

 

 “...좋습니다. 제게 맡겨 주시지요.”

 

 우시지마는 이 건을 맡으면 앞으로 계속 피곤할 거란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왠지 그의 의뢰는 도전정신을 불러 일으켰다. 저런 추상적인 설명만으로도 클라이언트를 만족시킬 수 있는 집을 디자인할 수 있을까? 자신의 실력을 검증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의뢰를 받아드렸다. 우시지마는 자신에 찬 얼굴로 오이카와를 바라보았다. 오이카와는 놀란 눈으로 우시지마를 쳐다보았다. 오이카와가 무슨 말을 하려는 듯 입을 몇 번 달싹거리다가 아예 꾹 입을 다물었다. 대신 우시지마가 입을 열었다.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뭐죠?”

 

 “제가 디자인을 완성할 때까지 그 쪽 옆에서 24시간 생활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

 

 “우시지마 씨!”

 

 오이카와는 물론이고 당황한 직원들은 전부 우시지마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우시지마는 가만히 오이카와의 눈을 응시하며 대답을 기다렸다. 하지만 오이카와가 입을 꾹 다물고 대답을 안 하자 우시지마는 덧붙여 말했다.

 

 “클라이언트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상황에서는 그를 만족시킬 디자인을 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당신이 말한 그런 집은 당신에 대한 이해가 없는 상태에선 콘셉트조차 잡을 수 없을 것 같군요. 그냥 24시간 옆에서 보좌하는 비서로 생각하셔도 됩니다. 간단한 업무 정도라면 도와드릴 수도 있습니다.”

 

 “왜 이렇게 까지 하는 거야?”

 

 우시지마가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자신이 원하는 집을 설계하려는 걸 보자 되려 당황한 오이카와가 물었다. 천성 사업가의 피라 자신이 손해 보는 것은 못 참는 오이카와에게는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기에. 우시지마는 설핏 웃었다.

 

 “그야 제가 당신이 말한 그런 건축가이기 때문입니다. 고객들이 원하는 집을 대신 실현시켜 주는 사람. 전 당신의 집을 설계하면서 제 능력이 어디까진지 알고 싶습니다. 계약하시겠습니까?”

 

 우시지마는 테이블 밑에 있는 서랍에서 계약서를 꺼내 오이카와의 앞에 놓았다. 오이카와는 빈 서명 란을 쳐다보다 턱을 치켜들고 말했다. 위로 올라간 입 꼬리가 매력적이었다.

 

 “1. 난 아주 바쁜 사람이거든. 그러니까 1년 내로 디자인을 완성시켜.”

 

 “좋습니다.”

 

 “그리고 내 옆에 있을 거라면 존댓말은 집어 쳐. 존댓말 들을 때마다 숨이 막히는 것 같으니까.”

 

 “좋다. 그럼 거기에 서명해라. 1년 내로 네가 만족할 집을 설계하겠다고 장담하지.”

 

 오이카와는 피식 웃고는 테이블 위의 연필꽂이에서 만년필을 꺼내 서명했다. 우시지마는 잉크가 마르길 잠시 기다렸다가 종이를 두 번 접은 다음 들고 일어섰다. 오이카와도 자리에서 일어나 우시지마에게 손을 내밀었다. 우시지마는 잠시 그 하얀 손을 보다가 마주 잡았다. 오이카와의 손은 매우 차가웠다. 우시지마의 손은 매우 뜨거웠다. 짧은 악수를 하고 손은 떨어졌다.

 

 “, 명함 줘. 그리고 내가 연락하면 짐 싸서 우리 집으로 와.”

 

 “알겠다.”

 

 오이카와는 우시지마가 내민 명함을 자신의 명함과 바꿔 들고는 왔을 때처럼 횡 하니 사라졌다. 오이카와가 나간 사무실에는 침묵만 흘렀다. 잠시 후 시라부가 우시지마에게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 우시지마 씨, 괜찮으시겠어요? 큰 프로젝트가 끝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괜찮다. 그보다도 재밌을 것 같군. 당분간 다른 일들은 나를 제외하고 진행하길 부탁한다.”

 

 시라토리자와 직원들은 우시지마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사무실에서 나온 오이카와는 회사로 향하는 차 안에서 손에 든 작은 명함을 보며 재밌단 듯 웃었다. 단순하게 정자체로 이름과 소속, 연락처만 쓰여 있는 새하얀 명함은 명함 주인의 성격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오이카와는 웃으면서 앞에서 운전하는 자신의 비서에게 말했다.

 

 “이와쨩, 나 재밌는 걸 찾았어.”

 

 “잘 됐네. 뭔지는 몰라도 적당히 놀아라.”

 

 이와이즈미는 백미러로 생글생글 웃는 오이카와를 힐끔 쳐다보고는 앞으로 시선을 돌렸다. 오이카와의 검은 세단은 미끄러지듯이 도로를 질주했다.

'중·장편 > LOVE HOUS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시오이] LOVE HOUSE 03  (0) 2016.08.23
[우시오이] LOVE HOUSE 02  (0) 2016.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