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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이와오이] For a Thousand Years

*for 미루님

*FHQ AU

 

 

 

 눈을 뜨자 잊고 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 구석에 앉아있던 검은 고양이가 검은 머리의 남자로 변하더니 오이카와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오랜만이네."

 

 쿠로오는 몸을 일으켜 제자리에 섰다. 그의 입은 움직이지 않았지만 오이카와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알아. 이제 정말 몇 번 안 남은 거."

 

 오이카와는 뒤로 돌아서 어두컴컴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바람에 망토의 끝자락이 살짝 흔들렸다. 그는 이번이 몇 번째로 되살아난 건지 알 수 없었다. 초반에 백 몇 번까지 세리다가 숫자는 무의미 하단 걸 깨닫고 관뒀기 때문이다. 오이카와는 제 주변에서 느껴지는 마력들을 흡수하고는 손끝으로 힘을 집중시켰다. 그리고 자신이 이번 생에 마왕으로 각성하기 전까지 살았던 마을을 가리키자 밝은 빛이 마을 전체를 뒤덮었다 사라졌다. 오이카와는 더 이상 자신을 기억하지 못할 마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익숙한 집 하나를 눈에 새길 듯이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이번 생에서도 소꿉친구라니, 대단하지 않아?"

 

 쿠로오는 그 말에 질린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렸으나 딱히 별 말은 하지 않았다. 그는 오이카와가 지금 하는 일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자신의 주군이 원하는 일이었기에 그저 침묵하는 수밖에 없었다. 쿠로오는 한숨을 쉬고는 허공에 마법진을 그렸다. 그러자 공기가 일렁이며 그 부분에만 다른 공간이 나타났다. 쿠로오는 오이카와에게 먼저 가란 듯이 고개를 살짝 숙이며 손짓했다. 오이카와는 억지로 발걸음을 돌려 자신의 성으로 향했다.

 

 

 이와이즈미를 자신에게 오도록 하는 오이카와의 수법은 수천 년 동안 그게 그거였다. 오이카와는 이번에도 적당히 왕국의 공주를 납치해 왔다. 겁에 질린 공주는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적당히 공주를 시미즈에게 넘기고는 제 왕좌로 가서 몸을 파묻듯이 앉았다. 피곤했다. 몸 보다는 정신적으로 오이카와는 너무 지쳐 있었다. 이제는 기억속에서도 희미해진 그 저주 때문에 수천 번 비슷한 삶을 살고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오이카와는 작게 한숨을 쉬다가 쿠로오를 불렀다.

 

 "쿠로쨩, 이제 이걸 몇 번 더 해야 저주를 풀 수 있지?"

 

 "....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습니다. 다만 그 땐-"

 

 "됐어. 무슨 말 하려는지 아니까 말 하지 마."

 

 "그냥 여기서 관두자, 마왕님. 아니, 오이카와. 이건 친구로서 하는 말이야. 어차피 인간은 모두 죽어. 저주 때문에 존재가 소멸해도 그냥 환생을 못할 뿐, 아무런 문제도 없어. 그러니까..."

 

 오이카와는 그 말에 자신의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쿠로오는 하던 말을 멈추고 그런 오이카와를 바라보았다. 잠시 뒤, 여전히 얼굴을 가린 오이카와가 입을 열었다.

 

 "그래, 인간은 모두 죽고 다시 태어나. 이와쨩도 그렇지. 여태까지 수백, 수천 번을 이와쨩이랑 같이 환생했으니까 잘 알아. 그래선지, 이젠 이와쨩이 환생하지 않는단 게 상상이 안 돼. 저주에 걸리기 전에는 환생하는 그를 보는 게 내 일상이었고, 저주에 걸린 다음에는 그랑 함께 환생하는 게 내가 사는 이유야. 그런 이와쨩이 완전히 사라진다면 난 더 이상 살 이유가 없어."

 

"그럼 네가 네 목숨과 맞바꿔서 저주를 푼 다음엔? 그 땐 네가 사라져. 네 본체가 다 부서지면 네 존재가 소멸 되잖아. 그 때 혼자 남은 이와이즈미는 어쩔 건데?"

 

 "그건 아까 네가 답했잖아. 인간은 모두 죽고 다시 태어나. 그러면서 전생의 기억은 전부 잊어버리지. 그러니까 인간인 이와쨩이라면 내가 없어도 괜찮을 거야."

 

 쿠로오는 더 이상 말하기 싫다는 듯이 사라졌다. 오이카와는 혼자 남은 홀의 적막함이 싫어 휘파람을 불어 까마귀를 불렀다. 어디선가 날아온 까마귀는 오이카와의 어깨에 앉아 그의 머리칼에 머리를 비볐다.

 

 "토비오쨩, 못 본 새에 귀여워졌네."

 

 그 말에 푸드덕 날아오른 까마귀는 오이카와가 앉은 왕좌에서 떨어져 단 밑에서 인간으로 변했다. 카게야마는 무릎을 꿇고 앉아 정식으로 인사한 뒤에 자리에서 일어나 오이카와를 올려다봤다.

 

 "혹시 이번에도 같은 일을 시키실 겁니까."

 

 ". 이젠 말 안 해도 잘 알 테니까 믿고 맡길게."

 

 카게야마는 뭔가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입을 달싹이다가 꾹 다물고는 까마귀로 변해서 창밖으로 나갔다. 오이카와는 인간들이 사는 마을로 가서 이 세대의 용사를 찾을 카게야마를 떠올리다가 다시 눈을 감았다.

 

 

 오이카와는 수정구슬로 제가 맡긴 일을 잘 수행하고 있는 카게야마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옆에서 검을 다듬고 있는 이와이즈미도. 오이카와는 조심스럽게 구슬에 비치는 이와이즈미의 얼굴을 쓸어보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이와이즈미를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오래 전 어느 날, 인간 마을에서 환생하게 된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의 옆집에서 태어났다. 그렇게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와 처음 만났고, 성년이 되기 전까지, 그러니까 마왕으로 각성하기 전까지 그와 둘도 없는 친구 사이 이상이 되었다. 그러다 스무 번째 생일 날, 오이카와가 각성하면서 그는 마왕으로서의 기억이 전부 돌아왔다. 그는 여태까지 해온 것처럼 마을 사람들의 기억을 지우려다 이와이즈미를 떠올렸다. 그리고 오이카와는 쿠로오의 충고를 무시하고 인간인 이와이즈미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 다행히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의 편이 돼 주겠다고 하였다.

 인간의 수명은 길어야 백년 남짓. 그러나 오이카와는 다음 생에서도 잘 부탁한단 이와이즈미의 마지막 말에 그가 환생하기를 기다렸다. 환생한 이와이즈미 역시 오이카와와 함께했다. 그렇게 이와이즈미의 환생을 기다리며 살던 중, 인간 세계와 마계 간에 충돌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 시기에 태어난 이와이즈미는 역시 또 오이카와의 편이 되었고, 그는 오이카와를 위해 전쟁터에 나섰다. 인간이면서도 인간을 적으로 돌린 그에게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다. 전쟁은 점점 치열해졌고, 세상은 황폐해지고 흉포해졌다. 그리고 마법을 쓸 줄 아는 사람들이 모여서 마왕을 없애기 위해 소멸 마법을 실행하였다.

 

 

 오이카와는 옛 일을 떠올리다가 그 당시 제 손에서 옅어지던 이와이즈미의 존재감이 떠올라 주먹을 꽉 쥐었다. 원래 오이카와가 받아야 했던 저주는 이상한 낌새를 알아챈 이와이즈미가 그 앞을 가로 막으면서 그 대상이 바뀌었다. 오이카와는 제 마력을 총동원 해봐도 저주를 몇 년 동안만 유보할 수 있었다. 그 시간 동안 그가 안 찾아 본 자료가 없었다. 그러나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 봐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좌절하던 오이카와는 문득 제 본체를 떠올렸다.

 마왕의 본체는 오이카와가 죽을 때마다 조금씩 부서지는데, 그 때 본체에서 떨어져 나오는 부스러기는 막강한 힘을 가진 보석이 되었다. 그 정도 힘이라면 이와이즈미의 저주를 풀 수 있지 않을까. 오이카와는 그 길로 쿠로오에게 가서 자신이 죽으면 그 보석으로 이와이즈미의 저주를 풀어주라고 말한 뒤, 용사를 찾아 갔다.

 보석은 오이카와보다는 나았다. 그러나 보석 한두 개로는 그 저주를 완전히 풀 수 없었다. 겨우겨우 다음 생으로 저주를 유보하며 조금씩 저주를 푸는 방법뿐이었다. 그래서 오이카와는 죽기 시작했다. 이와이즈미에게 걸린 저주를 풀기 위해 수천 년 동안 죽고, 다시 살아나는 것을 반복했다.

 

 

 옛날 일들을 회상하니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오이카와는 며칠 전에 숲에 들어왔던 용사 일행이 벌써 성의 근처에 다와 가는 것을 수정구로 확인하고는 적당한 마물들을 성의 입구에 배치시켰다. 죽는 것은 자신뿐이어야 했기에 그는 다른 이들이 있는 통로를 막고 왕좌에 앉아 이와이즈미를 기다렸다. 오이카와는 저주를 풀기 위해 죽기 시작하면서 늘 마왕으로 각성하고 나면 이와이즈미의 기억을 지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기하게 그는 마왕이 공주를 납치해갔거나 어떠한 소동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접하기만 하면, 이렇게 용사와 함께 오이카와를 찾아왔다. 오이카와는 굳게 닫힌 성문을 바라보다 쿠로오에게 작별 인사를 안 한 것이 떠올랐다. 지금이라도 인사할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성문이 흔들리는 것을 보고 생각을 관뒀다. 이제 이번 생 또한 얼마 남지 않았단 게 느껴졌다. 마왕이어도 죽는 것은 고통스러웠기에 살짝 두려움이 생겼지만, 문을 열고 햇빛을 등진 채로 들어오는 그를 보자 오이카와는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곧은 눈으로 망설임 없이 걸어오는 이와이즈미를 보며 그는 생각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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