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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마츠오이] 읽지 않음

* for 미루님

 

 

 마츠카와는 교실에 앉아 있다. 해는 어느새 산을 넘어가며 붉은 빛이 길게 교실 안쪽까지 들어오고 있었다. 부활동도 모두 끝난 시간, 마츠카와는 읽지 않은 메시지를 노려보았다. 며칠 전부터 읽음 표시가 사라지지 않는 메시지들을 보며 마츠카와는 한숨을 쉬다 머리를 헝클였다. 오이카와가 자신의 메시지를 무시하고 있었다. 그 뿐인가 학교에서 오이카와는 얼마나 잘 숨어 다니는지 그동안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졸업반이라 더 이상 부활동도 없는 바람에 마츠카와는 오이카와의 머리카락조차도 볼 수 없었다. 다른 녀석들에게 물어보아도 다들 고개를 젓거나 무시할 뿐, 아무도 그가 어디 있는지 마츠카와에게 말해주지 않았다. 마츠카와는 다시 한 번 한숨을 쉬고는 나흘 전 일을 떠올렸다.

 

 봄고 경기 후, 3학년들은 은퇴를 하였기에 방과 후에 시간이 비었다. 보통은 남아서 1,2학년 연습을 도와주었지만 그 날은 월요일이라 연습도 없었기에 마츠카와는 오이카와와 시내에 가기로 했다. 마침 시내에 새로 생긴 함바그 집이 있다며 오이카와가 전단지를 흔들었다. 마츠카와는 전단지의 사진은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내심 기대하며 시내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마츠카와는 오이카와와 이야기를 하면서 이런 생활도 이제 얼마 안 남았다는 생각이 들자 좀 아쉬워졌다. 오이카와와 다른 대학에 가니 마츠카와는 슬슬 관계를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대학까지 관계를 이어가다 어정쩡하게 헤어지는 것보단 차라리 지금 미리 끝내는 게 낫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며 마츠카와는 하차하기 위해 리더기에 버스 카드를 갖다 댔다.

 

 함바그는 생각보다 더 맛있었다. 마츠카와는 다음에 또 와야겠다고 생각하며 돈을 꺼냈다. 그리고 늘 정해진 순서처럼 오이카와가 좋아하는 베이커리로 향했다. 카페를 겸하고 있는 곳이었기에 트레이에 올린 것들을 계산을 하고 두 사람은 대충 자리를 잡아 앉았다. 마츠카와가 도쿄에 가면 이 우유 빵을 못 먹어서 어떡하냐고 놀리자 오이카와가 우는 소리를 하였다. 먹고 싶을 때마다 신칸센 타고 와서 먹을 거라며 말하는 오이카와를 보며 마츠카와는 웃다가 문득 헤어지고 싶지 않단 생각이 들었다. 마츠카와는 손 안의 컵을 만지작거렸다. 어차피 언젠가는 끝이 날 관계인데 조금이라도 더 빨리 정리하는 게 낫지 않을까. 마츠카와는 입이 쓰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잔을 두고 오이카와의 잔을 들어 입에 가져다 댔다. 혀가 아릴 정도로 단 핫 초콜릿이 쓴맛을 좀 없애주었다. 오이카와가 왜 자신의 것을 마시냐며 불평하는 것이 들렸지만 마츠카와는 그저 웃기만 하곤 대답하지 않았다.

 

 카페에서 나오자 오이카와가 영화관으로 마츠카와를 끌고 갔다. 그가 보고 싶다는 영화를 예매하고, 마츠카와는 바로 상영관으로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그러자 오이카와가 왜 팝콘을 안 사냐며 영화관에서 팝콘과 콜라가 얼마나 중요한지 말하기 시작했다. 그 말을 듣고 있으니 머리가 아파진 마츠카와는 카운터로 가서 콤보 세트 하나를 주문해서 들고 왔다. 그러자 오이카와는 생글생글 웃으며 팝콘을 받아들고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영화는 마츠카와의 취향과는 멀었다. 지겨워서 더 못 보겠다고 생각하던 마츠카와는 눈을 굴리다 오이카와를 힐긋 바라보았다. 영화에 푹 빠져선 스크린을 바라본다고 정신없는 오이카와의 얼굴을 마츠카와는 아예 고개를 돌려서 바라보았다. 그러다 콜라가 든 종이컵을 쥐고 있는 손으로 시선이 닿았고, 마츠카와는 그 손을 끌어당겨 가만히 깍지를 껴 보았다. 가만히 그 하얀 손을 바라보자 문득 이 손으로 코트 위에서 무서운 기세로 공을 내리치던 것이 떠올랐다. 마츠카와는 스크린에서 나오는 불빛으로 오이카와의 손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늘 반듯하게 다듬어져 있는 손톱, 길쭉한 손가락, 굳은살이 박인 손바닥. 마츠카와는 오이카와의 손바닥을 쭉쭉 펴고는 손가락으로 그 위에 글자를 적기 시작했다. 헤어질까? 영화를 보던 오이카와가 간지러웠는지 인상을 쓰고는 손을 빼려다 그 내용에 움직임을 멈추었다. 마츠카와는 오이카와의 표정을 살폈으나 오이카와는 마츠카와를 바라보지도 표정을 바꾸지도 않았다. 그저 스크린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웃긴 장면이 나와도 웃지도 않으며 영화를 바라만 보았다.

 

 영화가 끝나자마자 오이카와는 자리에서 일어나 마츠카와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로 상영관을 나갔다. 마츠카와는 조용히 그 뒤를 따라 나갔다. 그러자 쓰레기통에 거칠게 빈 통과 컵을 버리는 오이카와가 보였다. 마츠카와가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오이카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자 오이카와가 고개를 돌려 마츠카와와 눈을 맞춰왔다. 오이카와는 아무 말 없이 마츠카와를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두 사람을 힐끔 거리며 쓰레기를 버리고 지나갔다. 상영관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빠져나갔을 때 쯤, 마츠카와는 입을 뗐다. 헤어지자. 오이카와가 입술을 깨물다가 물었다. 진심이야? 마츠카와는 입을 달싹거리다가 다물곤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목소리를 내면 거짓말이라고 말해버릴 것 같았기에. 오이카와는 그대로 뒤로 돌아서 멀어졌다. 마츠카와는 그 자리에 한참 서 있다가 괜히 애꿎은 쓰레기통을 발로 차고는 밖으로 나갔다.

 

 마츠카와는 자기가 앉아 있는 오이카와의 책상 서랍에 손을 넣어보았다. 이미 대학 진학이 확정돼 있어서 그런지 서랍엔 구겨진 종이 쪼가리 몇 개만 들어있었다. 구겨져 있던 것을 펴자 수업시간에 오이카와가 낙서라도 한 건지 글자가 몇 개 적혀있었다. 눈에 익은 그 글씨들을 바라보다가 다시 서랍에 종이를 넣고는 마츠카와는 휴대폰 화면을 켰다. 메신저 앱을 눌러 오이카와와의 대화창에 들어갔다. 여전히 오이카와는 지난 나흘간 보낸 메시지들을 읽지 않았다. 그렇게 이별을 고한 마츠카와는 후회했다. 그래서 계속 메시지를 보냈다. 마츠카와는 스크롤을 올려 자신이 보낸 메시지들을 보았다. 미안해. 내가 잘못 생각했어. 헤어지지 말자. 연락 줘. 오이카와. 내가 잘못했어. 메시지 좀 읽어 봐. 오이카와. 토오루. 읽고 씹어도 되니까 제발 읽기라도 해 줘. 보고 싶어. 오이카와. 제발. 어느새 해가 산을 거의 다 넘어가 있었다. 붉었던 하늘은 다시 푸르게 변하다 이내 점점 어두워졌다. 마츠카와는 오이카와의 얼굴을 떠올려 보았다. 그러다 등 뒤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와이즈미였다. 문소리에 놀라서 등을 돌린 마츠카와가 다시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와서는 이와이즈미에게 왜 아직도 집에 안 갔냐며 물으며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교실에 성큼성큼 걸어 들어온 이와이즈미가 마츠카와의 뒤통수를 내리쳤다.

 

 “정신 차려, 마츠카와.”

 

 “내가. .”

 

 “오늘 화장 끝났어.”

 

 “무슨 소리야.”

 

 이와이즈미가 자신을 바라보지 않는 마츠카와의 멱살을 거칠게 잡고 그를 일으켜 세웠다. 마츠카와는 멱살이 잡힌 채로 이와이즈미를 내려다보았다.

 

 “장례식도 끝났으니까 이제 보내주라고.”

 

 “무슨 소리 하는 거냐고.”

 

 “네가 이러면 그 녀석이 편히 가겠냐! 이제 정신 차려, 이 자식아! 오이카와는 죽었잖아! 내 눈 피하지 말고 똑바로 봐! 나흘 전에 집에 오는 길에 사고 나서 그 자리에서 죽었다고!”

 

 “입 다물어. 더 이상 말하지 마. 그딴 개소리 지껄일 거면 꺼져.”

 

 마츠카와는 이와이즈미에게 일으켜 세워질 때 떨어진 휴대폰을 주워들고는 다시 오이카와의 자리에 앉았다. 이와이즈미는 휴대폰만 붙들고 있는 마츠카와를 노려 보다 떨리고 있는 손과 바닥에 떨어져 짓밟혀 있는 새하얀 국화를 발견했다. 이와이즈미는 손이 떨릴 정도로 주먹을 꽉 쥐었다가 들고 왔던 가방을 주워들고는 오이카와의 사물함으로 가서 그의 물건들을 전부 쓸어 담았다. 사물함이 빈 것을 확인한 이와이즈미는 다시 한 번 마츠카와를 바라봤다가 사물함을 발로 차고는 교실 문을 열고 나갔다. 어느새 바깥엔 새카만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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