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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이와오이] 거짓말

 오이카와와 나는 한 마을에서 자랐다. 서로 옆집에서 산 덕분에 뛰어다닐 쯤에는 항상 함께 마을을 헤집고 다니며 크고 작은 사고를 쳤었다. 그리고 들판에서 칼싸움을 할 때면 오이카와는 늘 어디서 배웠는지 모를 솜씨로 모두를 제쳐버렸다. 우리는 암묵적으로 오이카와가 용사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상황은 우리가 열네 살이 되며 바뀌어버렸다. 검술에도 능하고, 항상 밝았던 녀석에게 마을사람들 모두가 그가 장차 용사가 될 것이라며 칭송했었다. 오이카와도 딱히 싫어하진 않았다. 오히려 검술을 더 갈고 닦으며 최연소로 기사단과 맞먹는 실력을 가지게 되었다. 문제는 거기서 발생했다. 작은 마을이었던 우리 마을에 성기사단들이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더니 오이카와를 데리고 가버렸다. 사람들은 나라에서도 드디어 오이카와의 실력을 인정해 주었다며 기뻐했지만 어째서인지 나는 그 무표정한 기사단들을 보며 소름이 돋았다. 몇 번이나 가지 말라고 붙잡고 싶었지만, 오이카와는 화사하게 웃으며 말했다. 다녀올게, 이와쨩.

 

 몇 달 뒤, 기사단들이 다시 찾아왔다. 그리고 마을을 파토내기 시작했다. 마왕을 숨겨준 간악한 대역 죄인들이라며, 마을 곳곳에 불을 지르고, 어른이든 아이든, 여자든 남자든, 상관없이 마을에 살던 사람을 전부 죽였다. 나는 운 좋게도 그날따라 오이카와 생각이 나 함께 놀던 들판에 가 있어서 봉변을 당하지 않았다. 마을에 돌아갔을 때, 난 쑥대밭이 된 마을을 보며 허망함을 감출 수 없었다. 단 한명도 살아남은 사람이 없었다. 무슨 일인지 파악조차 못해 그저 불타는 집을 바라보고 있을 무렵, 굴러다니던 왕의 교지를 주웠다. 불에 타버려 일부만 남았지만 내용을 얼추 알아 볼 수는 있었다. 오이카와가 마왕이라니. 이상한 소리였다. 이가 갈리는 소리가 들리며 턱이 아릿하게 아파왔다. 눈앞에선 흐릿하게 불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우선 오이카와를 찾아야 겠단 생각이 들었다.

 

 

*** 

 

 

 이와이즈미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정보를 얻기 시작했다. 뭔가 필요한 게 생기면 가까운 마을에서 여러 잡일을 해주며 돈을 벌어 충당했다. 그렇게 떠돌다보니 어느새 수도로 와 있었다. 그리고 거기선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마왕 오이카와의 악행과 그를 무찌르러 갔다가 되돌아오지 못한 수많은 용사들. 사람들은 그럼에도 끊임없이 도전하는 젊은 용사들과 자신들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성기사단과 왕에 대해 찬사하며, 그들을 받들어 모셨다. 이와이즈미는 시장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했다. 그러나 그 사실은 곧 마왕을 무찌르러 갈 용사 파티원을 구한다는 소식에 잊혀졌다. 이와이즈미는 곧장 그 소식을 전달하는 사람에게로 가서 자신도 거기에 끼고 싶다고 말했다.

 

 이와이즈미는 지원받은 돈으로 갑옷과 무기를 마련했다. 그러고도 한참은 남은 돈주머니를 보며 그는 코웃음 쳤다. 이게 내 목숨 값이란 말이지. 그는 묵직한 주머니를 공중에 몇 번 띄웠다가 품속에 다시 넣었다. 드디어 출정하는 날이 밝았다. 이와이즈미는 마을 어귀에 모인 사람들을 헤치고 준비 중인 용사들에게 다가갔다. 곧 나팔이 시끄럽게 울리고 말들이 일제히 출발했다. 사람들은 환호했고,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단 흥분에 심장이 뛰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천천히 앞선 용사들의 뒤를 따라서 걷기 시작했다. 오이카와.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의 웃는 모습을 떠올렸다.

 

 우스웠다. 용사들은 마물들이 나타날 때마다 이와이즈미처럼 자원한 사람들이나 용병들을 앞세웠다. 그리고 그들이 마물들을 다 해치우고 나면 다시 말을 몰아 앞장섰다. 이와이즈미는 용사란 작자들을 날카롭게 바라보다가 입에 고인 침을 흙바닥에 뱉었다. 그래도 마왕 성이 꽤 가까운 곳에 보였기에 이와이즈미는 참았다. 마음 같아선 이들을 모두 버리고 혼자 성으로 향하고 싶었지만 숲에서 나타나는 마물들을 혼자 상대하기엔 버거울 것 같아서 그는 잠자코 참았다. 그는 다음에 나타나는 마물들은 좀 더 갈기갈기 찢어야겠단 생각을 하며 피가 흐르는 왼팔을 천으로 동여맸다.

 

 마왕 성에 도착하자마자 이와이즈미는 흥분한 말들이 제 주인들을 던져버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숲 깊은 곳으로 사라지는 혈통 좋은 백마들을 보며 이와이즈미는 통쾌하단 생각을 참을 수 없었다. 수풀사이로 내던져진 용사들을 뒤로한 채, 이와이즈미는 성문을 열었다. 문은 마치 기다렸단 듯이 부드럽게 열렸다. 이와이즈미가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성에 그의 발자국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중앙홀로 향하는 것 같아 보이는 문을 다시 한 번 밀자, 저 멀리 왕좌에 앉아 있는 사람이 보였다. 거의 2년 만에 재회한 오이카와였다. 이와이즈미는 빠른 걸음으로 그에게 다가가다 점점 속도를 늦췄다. 검은 뿔과 불타는 것 같은 붉은 눈동자, 그리고 증오만이 가득 담긴 그의 시선. 이와이즈미는 이 자가 자신이 알던 그 오이카와가 맞는지 의심이 들었다. 그는 이 눈앞의 마왕이 오이카와가 아니길 바랐다. 그러나 마왕이 입을 연 순간 이와이즈미는 절망했다. 오랜만이야. 이와쨩.

 

 

***

 

 

 몇날 며칠을 걸어서 수도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바로 나는 이상한 방에 갇혔다. 그리고 머리 위로 울리는 웃음소리들. 너는 마왕이 될 거야. 전역에 네 악독함이 알려지겠지. 그러면 우리는 용사와 기사단을 보내 너를 무찌를 거고. 어때. 환상적인 시나리오지 않아? 너를 죽인 용사와 기사단, 그리고 폐하에게 존경과 찬사를 보내는 백성들. 너에게 나라를 강하게 만들 기회를 준 걸 고맙게 생각해. 그리고 연이은 이상한 실험들. 살을 파고드는 수십 개의 주사바늘과 몸이 타들어가는 고통. 그렇게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정신을 차렸을 때 이상한 기분에 머리를 더듬자 거기엔 기분 나쁜 뿔이 돋아 있었고, 간간히 지급되는 물에 비친 내 눈동자는 섬뜩할 정도로 붉은색으로 변해 있었다. . 아아. 말도 안 돼.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자 쏟아진 물에 바짓단이 젖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어지는 비명소리. 누가 이렇게 소리를 지르는 거지? 익숙한 목소리야. , 그래. 그래, 이건 내 목소리다. 정신없이 소리를 지르다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엔 의자에 묶여있었다. 여전히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홀로. 온몸이 바르르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어느 날 저편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금으로 된 번쩍이는 갑옷을 입은 채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값비싸 보이는 검을 들고 오는 사람. 간만에 본 햇빛에 눈이 부셔 잔뜩 찡그리다 빛에 익숙해졌을 때 눈을 깜빡였다. 그러자 그 남자는 내 머리채를 붙잡더니 검을 목에 들이밀었다. 아직 죽을 순 없어. 몸이 먼저 움직였다. 그리고 다시 정신이 들었을 땐 바닥은 온통 피범벅이었다. 웃기지. 아무리 값비싼 갑옷이라도 모든 검을 막을 순 없다니. 손에 든 그 남자의 검을 바라보자 변해버린 내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눈물이 차올랐다. 분노로 검이 떨렸다.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끝까지 살아남아서 그 잘난 목들을 전부 쳐버리겠다고 다짐했다.

 

 그 이후로, 내가 갇혔던 성에서 날 죽이러 오는 용사란 것들을 하나하나 죽이기 시작했다. 성 밖으로 나가려고도 했지만 기사단들이 풀어놓은 괴상한 동물들 때문에 몇 번 시도하다 말았다. 그것들을 죽이는 데에 진을 빼고 싶진 않았다. 그리고 이렇게 용사들을 죽이다보면 저쪽에서도 노발대발하며 뭔가 다른 수를 써오지 않겠어? 게다가 그 이상한 실험 때문인지 배고픔도 갈증도 그 어느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날 묶어놨던 왕좌에 앉아서 용사들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 잘난 족속들이 내 검에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것들이 통쾌하고 즐거웠다. 그런데 이번엔 왜. 왜 익숙한 얼굴이 내 눈앞에 있는 걸까. 괴기하게 변해버린 내 모습을 너한텐 절대 보여주고 싶지 않았는데.

 

 

*** 

 

 

 이와이즈미는 그동안 들었던 마족의 특징들을 가진 오이카와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아니라고 믿고 싶었던 이와이즈미는 눈앞의 변해버린 오이카와의 모습에 눈물이 차올랐다. 자신에게 화사하게 웃어주던 오이카와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저 지금은 잔혹하게 웃는 그의 모습을 한 괴물밖엔. 이와이즈미가 움직이자 오이카와도 검을 들었다. 이와이즈미가 달려들었다. 검이 부딪히며 날카로운 소리가 몇 번 울렸다. 부들부들 떨리는 검을 사이에 두고 오이카와는 읊조리듯 말했다. 마왕을 무찌르러 온 용사가 이것밖에 안 돼? 이와이즈미는 그 얼굴이 왠지 슬퍼 보인다고 생각하다 고개를 저었다. 제 앞에 있는 건 흉악한 마왕이었다. 자신이 알던 오이카와가 아니라. 오이카와는 그런 이와이즈미의 생각이라도 읽었는지 웃었다. , 이와쨩이 알던 오이카와 씨랑 겹쳐 보여서 못 싸우겠어? 이와이즈미는 맞닿아있던 검을 쳐내고는 다시 검을 휘둘렀다. 그렇게 부르지 마. 오이카와는 웃음기를 지우고 다시 싸움에 집중했다.

 

 이와이즈미는 마왕의 복부 깊숙이 검을 찔러 넣었다. 검이 살을 꿰뚫는 소름 끼치는 감각이 느껴지자 이와이즈미는 저도 모르게 검에서 손을 뗐다. 한 발짝 물러서자 마왕이 피를 토하기 시작했다. 제 배에 꽂힌 검을 본 오이카와는 주저앉으며 웃었다. 그리고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으며 이와이즈미를 올려다보았다. 미안해. 오이카와는 그 말 한 마디만 남기곤 눈을 감으며 쓰러졌다. 쓰러진 마왕을 본 이와이즈미는 체력이 다 소진된 걸 느끼며 자신도 주저앉아 뒤로 누웠다. 거칠게 숨을 내몰아쉬던 그는 문득 오이카와가 떠나던 그 날처럼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마족인데 왜 그 기이하다던 마법을 안 쓰고 검을 썼지? 그 순간 이와이즈미는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던 모든 의혹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벌떡 몸을 일으켜 이와이즈미는 마왕에게 다가갔다. 아니, 오이카와에게 다가갔다. 이와이즈미는 떨리는 손을 감출 수 없었다. 천천히 오이카와의 볼을 감싸자 자신이 그렇게 좋아하던 오이카와의 얼굴이 그제야 제대로 보였다. 이와이즈미는 눈을 가린 오이카와의 앞머리를 넘겨주며 조심스럽게 그 이름을 불러보았다. 오이카와. 그러나 감긴 눈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와이즈미는 식어가는 오이카와의 몸뚱이를 끌어안고 오열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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