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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카게오이] 망설이지 마세요

* for 세이님

 

 

 

 

 

 손목시계를 힐끔 바라보자 약속 시간이 훌쩍 지난 게 보였다. 연말이라 시내로 가는 길이 막히는 바람에 카게야마는 헐레벌떡 약속장소로 달렸다. 수많은 인파를 헤치고 시내 중앙에 위치한 광장을 향해 달리자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곧 남들보다 좀 더 큰 키인 덕에 홀로 비죽 튀어 나와 있는 익숙한 뒤통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카게야마는 그대로 오이카와에게 달려가 그의 팔을 붙잡고 거칠어진 숨을 골랐다.

 

 “지각이야, 토비오쨩.”

 

 오이카와는 태평하게 손에 들고 있던 커피를 마저 마셨다. 좀 진정이 됐는지 카게야마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죄송해요, 길이 막혀서 버스에 발이 묶였어요.”

 

 오이카와는 뭐라고 더 핀잔을 주려다 추운 날씨인데도 카게야마의 앞머리가 땀 때문에 이마에 덕지덕지 붙은 것을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 나 배고파.”

 

 “, !”

 

 카게야마는 앞장서서 걷는 오이카와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앞으로 나아가기도 힘든 거리에서 카게야마는 오이카와의 뒤통수만 바라보며 걷다가 어떤 커플과 부딪혔다. 죄송하다고 인사하다가 그는 문득 서로 붙잡고 있는 손을 발견했다. . 손이라 하니 서브를 넣기 전에 공을 슬쩍 쓰다듬던 오이카와의 손이 떠올랐다. 카게야마는 힐끔 오이카와의 손을 쳐다보았다. 날씨가 추운 탓인지 손끝은 발갛게 물들어 있었다. 카게야마는 저도 모르게 제 손을 움찔거렸다. 그러다 앞에서 걸음을 멈춘 오이카와와 부딪혔다.

 

 “토비오쨩, 어디다 정신을 팔고 다니는 거야. 다 왔으니까 들어가자.”

 

 “, 죄송합니다. 근데 자리가 없는 것 같지 않나요?”

 

 “바보. 예약해 뒀으니까 상관없어. 그나저나 예약시간을 여유롭게 안 잡았으면 못 들어갈 뻔 했네.”

 

 “?”

 

 카게야마는 시끌벅적하게 떠들며 지나가는 무리 때문에 오이카와의 뒷말을 못 들어서 되물었다. 그러자 오이카와는 됐다며 가게로 들어갔다. 카게야마는 자신이 또 오이카와의 기분을 상하게 했나 싶어 안절부절 하다가 안 들어 오냐는 오이카와의 말에 서둘러 가게로 들어갔다.

 

 2층 창가로 안내받은 두 사람은 주문을 한 후 한 동안 말이 없었다. 오이카와는 창밖의 사람들을 바라보았고, 카게야마는 가게 안에 흐르는 잔잔한 캐럴에 맞춰 손가락을 까닥이는 오이카와의 손을 바라보았다. 아까부터 계속 여태까지 손 한 번 안 잡아본 게 신경 쓰였다. 카게야마는 괜히 초조해져 테이블 아래 무릎 위에 올려둔 손을 계속 꼼지락 거렸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어?”

 

 “?!”

 

 갑작스런 오이카와의 물음에 놀란 카게야마가 자신도 모르게 크게 대답해버렸다. 레스토랑 안은 제법 조용한 편이었기에 이목이 카게야마에게 집중되었다가 다시 흩어졌다. 오이카와는 물을 마시며 작게 웃었다.

 

 “왜 그렇게 긴장하고 있는 거야. 혹시 토비오쨩 이런 곳은 처음? 하기야 너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 아니. 그게. ...”

 

 “뭔데, 빨리 말해 봐. 혹시 알아? 오늘 오이카와씨가 기분이 좀 좋으니까 들어줄지.”

 

 “그러니까.......”

 

 “?”

 

 식사 나왔습니다. 종업원이 음식이 예쁘게 세팅된 접시를 두 사람 앞에 내려놨다. 카게야마는 종업원이 자신의 말을 들었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자 갑자기 공기가 후끈하단 생각이 들어 붉어진 얼굴로 입고 있던 코트를 벗었다. 테이블은 어느새 음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오이카와는 휴대폰을 들어 사진을 몇 장 찍고는 식기를 들었다. 카게야마도 우물쭈물하다가 오이카와를 따라 포크와 나이프를 들었다. 음식은 맛있었다. 오이카와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다음에 한 번 더 와야겠다 말하며 부지런히 포크를 움직이며 먹었다. 카게야마는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입 안 가득 음식을 넣고는 씹었다. 찰칵. 카메라 셔터 소리에 고개를 들자 작게 웃고 있는 오이카와가 카게야마 사진을 찍었는지 휴대폰의 후면 렌즈가 그를 향해있었다. 카게야마가 입에 든 걸 다 삼키고 나서 가만히 오이카와를 바라보자 오이카와가 의아하단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 찍으면 안 돼?”

 

 “아뇨, 찍으시는 건 상관없는데... 다른 사람들한텐 보여주지 말아 주세요.”

 

 “생각해 볼게.”

 

 카게야마는 다시 고개를 숙이고 먹던 것을 마저 먹으려다 오늘따라 기분이 좋아 보이는 오이카와를 힐끔 거렸다. 오이카와는 작게 흥얼거리기 까지 하며 고기를 썰고 있었다. 그 모습에 뭔가 속이 울렁거린다고 생각하며 카게야마는 시선을 돌려 가게 내부를 둘러보았다. 작은 소품들로 꾸며져 있는 레스토랑은 어딘가 포근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가게엔 유독 커플들이 많았다. 카게야마는 오이카와가 왜 자신과 이런 곳에 온 걸까라고 생각하다가 문득 자신들의 관계가 떠올랐다.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것 같아 카게야마는 그대로 고개를 숙이고 먹는 데에 집중했다.

 

 식사를 끝내고 나오자 인파는 더 늘어나 있었다. 카게야마는 거리를 가득 채운 사람들을 보며 피곤함을 느꼈다. 마음 같아선 집에 가서 배구 잡지나 뒤적거리고 싶었으나 오이카와가 딱히 돌아갈 생각이 없어 보였기에 조용히 그 뒤를 따라 걸었다.

 

 “아까부터 신경 쓰였는데, 토비오쨩 왜 자꾸 내 뒤에서 걸어?”

 

 “?”

 

 “빨리 내 옆에 와.”

 

 “...”

 

 카게야마는 한 걸음 정도 차이 나던 거리를 좁혔다. 그러자 오이카와와 손등이 서로 맞닿았다. 카게야마는 놀라서 손을 떼려는데 오이카와가 손을 맞잡아 왔다. 누가 볼까봐 주변을 둘러보던 카게야마가 오이카와를 바라보자 오이카와는 정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말했다.

 

 “아까부터 잡고 싶어서 그렇게 안절부절 못한 거 아니었어?”

 

 카게야마는 괜히 손바닥으로 전해져 오는 온기에 부끄러워져 고개를 푹 숙이고는 대답 대신에 위아래로 끄덕이기만 했다. 그리고 오이카와에게 잡힌 손을 꼼지락 거리다가 슬그머니 깍지를 꼈다. 어차피 이렇게 사람들이 많다면 자신들이 손을 잡고 있단 것도 안 보이지 않을까. 카게야마는 광장의 거대한 트리를 보며 손바닥도 가슴도 간지러워 견딜 수 없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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