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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마츠오이] 로미오와 줄리엣

 

 

 학급회의 시간이었다. 마츠카와는 냉방이 잘 되는 교실에 앉아 밖에서 축구를 하는 1학년 후배들을 보았다. 반장이 앞에 나와서 무언가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으나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자, 그럼 우리는 이번에 1반이랑 같이 연극을 할 예정이야! 1반 반장이랑 이야기해 봤는데 우리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하는 게 어때? 반도 두 반이니까 캐퓰렛이랑 몬태규로 나누기도 쉽고!"

 

 올해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할 예정인지 다들 하고 싶은 배역을 맡기 위해 웅성거렸다. 1반이면 오이카와네 반이니까 아마 우리반에선 줄리엣이 나오겠네. 마츠카와는 자신과 먼 이야기라 생각하며 그저 지나가는 행인 7이나 캐퓰렛가의 사람 5 정도의 역할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다시 창 밖으로 관심을 돌렸다. 아, 들어갔다. 빨간 팀의 승리네.

 

 "...카와, 마츠카와!"

 

 "어?"

 

 벌써 내가 배역을 정할 차례인가. 다른 곳에 신경에 가 있었더니 어느새 자신의 이름이 불리는 지도 몰랐던 마츠카와는 턱에서 손을 떼고는 반장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미안한데 네가 로미오를 맡으면 안 될까?"

 

 "뭐? 로미오는 오이카와 아냐?"

 

 "아, 아까 못들었구나. 그게, 1반 여자애들이 자신이 줄리엣이 못 된다면 차라리 오이카와가 줄리엣을 하는 게 낫다 그래서 오이카와가 줄리엣을 맡게 됐어. 그럼 우리 반에서 로미오를 뽑아야 하는데, 아무래도 우리 반에는 오이카와보다 큰 애는 너 밖에 없어서 말야. 그래도 로미오가 줄리엣보다는 큰 게 나을 거고 또 너네 같은 배구부니까 연습하기도 편할거라고 생각해서... 안 될까?"

 

 골치 아파졌다. 마츠카와는 머리가 지끈거려오자 인상을 쓰다가 안절부절 못하는 반장을 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도대체 어쩌다 이렇게 된 거야!"

 

 마츠카와는 대본을 들고는 오이카와와 마주 서서 리딩 연습을 했다. 여자애들이 쓴 대본은 원작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었지만, 남자 두 명이서 이 대사들을 읊는 것은 고문이었다.

 

 "오이카와, 나도 별로 안 하고 싶으니까 그냥 적당히 하고 끝내자."

 

 "맛층은 분하지도 않아? 이렇게 된 이상 완벽한 줄리엣이 돼 주겠어!"

 

 "그래그래, 그럼 다시 무도회 장면부터 시작하자."

 

 "알겠어!"

 

 "...... 만약 제 부끄러운 손으로 이 성전을 더럽힌다면, 얼굴을 붉힌 두 순례자 같은 제 입술이 부드러운 입맞춤으로 그 거친 촉감을 달래기 위해 기꺼이 멈춘 것이 그 죄입니다."

 

 "...좋은 순례자님, 당신은 그 손으로 잘못을 저지르고 있어요. 성자의 손은 순례자와 닿기 위해 존재하며, 손바닥을 마주 대는 것은 신성한 순례자의 입맞춤이랍니다."

 

 "성자에게는 입술이 없나요? 순례자에게도요?"

 

 "순례자님, 그건 기도를 하기 위한 입술이랍니다."

 

 "아, 사랑하는 성자님. 입술을 손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리고 그 손을 마주해 성직자의 키스를 해요."

 

 마츠카와는 오이카와의 손을 끌어 올려 자신의 손과 맞대었다. 마주 댄 손 중 마츠카와의 손이 좀 더 컸다. 오이카와는 왼손에서 느껴지는 온기에 기분이 이상해 졌다. 하지만 연습은 멈추지 않았고, 오이카와는 마츠카와의 눈을 바라보며 다음 대사를 말했다.

 

 "그 기도의 목적을 인정합니다만 성자는 움직이지 않아요."

 

 "그러면 제 기도가 끝날 때까지 움직이지 말아요."

 

 오이카와는 가까워지는 마츠카와의 얼굴을 보다가 저도 모르게 두 눈을 감고 말았다. 마츠카와의 키가 이렇게 컸었나. 오이카와는 빠르게 뛰기 시작하는 심장소리를 무시하려고 애썼다. 그러자 귓가에서 작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왜 긴장하고 그래. 설마 진짜 하겠어?"

 

 오이카와는 눈을 감은 자신이 바보같다고 생각하며 팔로 얼굴을 가렸다. 하지만 붉어진 귀까지는 숨길 수 없었다. 마츠카와는 자신보다 좀 더 작은 오이카와를 내려다 보면서 자신의 심장소리가 크지 않길 바랬다.

 

 

 마츠카와는 오이카와에게 첫 눈에 반하진 않았다. 오히려 정반대로 서서히 그에게 물들어 갔다. 처음에는 재수 없는 녀석, 다음에는 불쌍한 놈, 그리고 점점 눈으로 그를 쫓기 시작하며 사소한 습관들까지도 알게 되고 나서야 깨달았다. 아, 나 지금 사랑을 하고 있구나. 천천히 시작한 사랑은 조금씩 마츠카와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지금처럼. 마츠카와는 어느 순간부터 오이카와의 등을 바라보는 것이 익숙해졌다. 이제는 눈을 감아도 그 뒷모습을 그릴 수 있을 정도로. 그 사실을 인지한 순간 그저 한숨만 나왔다. 이 답없는 마음을 어떻게 해야할 지 감이 안 잡혔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츠카와는 그냥 두기로 했다. 그 마음이 서서히 커져서 주체할 수 없을 때가 된다면, 그 때 가서 뒷일을 고민하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인 것 같다고 마츠카와는 생각했다. 오이카와와 눈을 맞추고 사랑의 대사를 읊으며 오랜 시간을 함께 하자 마츠카와는 자신이 오이카와와 사귀는 것인지 혼란스러워졌기에. 그래서 그는 연습을 하고 나면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자신의 감정을 한 때의 치기라고 넘겨 짚은 것부터가 문제였던 것 같았다. 마츠카와는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혼란스러운 마츠카와와는 달리 연극 준비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오이카와가 줄리엣이란 게 소문이 나면서 기대하는 사람이 늘어났고, 같은 반 아이들은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소품 등을 더욱 더 열심히 준비하였다. 그리고 드디어 줄리엣과 로미오의 의상이 완성되었다.

 

 "그냥 바지로 만들면 안돼? 꼭 치마 입어야 해? 그리고 이 머리 장식들은 뭐야? 줄리엣이라기에는 너무 화려하지 않아?"

 

 "완벽한 줄리엣이 되고 싶다며? 좀만 참아!"

 

 오이카와는 여자애들에게 둘러싸여서 그가 지칠 때까지 꾸며지고 나서야 그들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다. 잔뜩 지친 오이카와는 울상을 지으며 마츠카와를 찾아 나섰다. 오이카와는 마츠카와가 옷을 갈아 입기로 한 교실 문을 위풍당당하게 열었다. 그리고 줄리엣과 로미오는 눈이 맞았다. 두 사람 모두가 크게 뜬 눈으로 서로만을 바라보았다.

 

 "생각보다 더 잘 어울리네, 오이카와. 연기만 늘면 되겠어."

 

 "맛, 맛층도 타이즈가 생각보다 어울리네. 웃길 줄 알았는데, 실망이야."

 

 "그럼 옷도 맞췄겠다. 연습이나 한 번 더 해 보자."

 

 

 그 날, 연습을 구경하러 온 이와이즈미와 하나마키는 오이카와와 마츠카와가 잘 어울린다며 한 바탕 웃고는 자신들의 공연, 모모타로를 준비하러 같은 반 아이들에게 끌려갔다. 다시 조용해진 교실에서 그들은 몇 번이고 사랑의 말을 말했다.

 

 

 드디어 그 동안의 연습이 결실을 맺는, 연극 상영날이 되었다. 마츠카와는 긴장이 되는지 연신 물을 마시며 대본을 중얼 거렸고, 오이카와는 가발과 화장이 흐트러질까봐 가만히 앉아서 다리를 떨고 있었다. 차례대로 각반에서 준비한 공연들이 시작하고, 곧 마지막 순서인 1반과 6반의 합동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의 차례가 왔다.

 

 마츠카와는 생각보다 연기를 잘 했다. 사람들이 그냥 배구부원 중 하나라고 생각했던 마츠카와를 다시 보게 될 정도로. 그래서일까, 오이카와는 점차 줄리엣에 동화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무대에서, 마츠카와와 첫 만남인 순간. 아. 오이카와도 줄리엣과 함께 사랑에 빠져버렸다. 주변이 슬로우 모션처럼 움직이는 가운데에서 마츠카와만이 뚜렷이 보였다. 그리고 가장 처음 연습했던 그 부분이 왔다.

 

"아, 사랑하는 성자님. 그저 입술을 손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리고 그 손을 마주해 성직자의 키스를 해요."

 

 연습 때처럼 왼손이 마주 닿았다. 그리고 서로의 열기가 손바닥을 타고 전달되었다.

 

 "그 기도의 목적을 인정합니다만 성자는 움직이지 않아요."

 

 "그러면 제 기도가 끝날 때까지 움직이지 말아요."

 

 마츠카와가 점점 가까워 질 수록 오이카와는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그래서 그 날처럼 오이카와는 눈을 감았다. 하지만 그 날과는 달리 오늘은 정말 입술이 맞닿았다. 오이카와가 놀라서 눈을 뜨자 이번에는 마츠카와도 눈을 감고 있었다. 곧 입술이 떨어지고, 마츠카와는 입을 열었다.

 

  "이로써 당신 덕분에 제 입술에서 죄가 사라졌군요."

 

 "그럼 그 죄는 이제 제 입술이 가지겠네요."

 

 "제 입술때문에? 오, 얼마나 달콤한 재촉인가! 그 죄를 다시 나에게 주세요."

 

 다시 한 번 두 사람은 입을 맞추었다. 촛불이 아른거리고 주변에는 느리게 춤을 추는 배우들, 그리고 어두운 눈 앞. 그 모든 것들이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오이카와는 연극이 끝나면 이 모든 감각들이 사라질까 두려웠다.

 

 

 연극은 대성공이었다. 하지만 오이카와는 연극이 끝나고 나서 마츠카와를 의도적으로 피했다. 혹여 자신이 가진 마음이 한 여름 밤의 꿈처럼 연극이 끝나면 점차 사그라질까 봐. 그래서 축제기간 내내 완전히 피할 순 없어도 오이카와는 가능하면 마츠카와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축제 때 찍은 사진 인화해 왔어! 다들 봐 봐!"

 

 오이카와는 사진을 보기 위해 다른 아이들처럼 책상에 모였다. 거기에는 자신 뿐만 아니라 다른 반의 학생들도 잔뜩 찍혀 있었다. 그 중에서 자신이 나온 사진을 몇 장 골라 보던 오이카와는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그래서 다른 사진 몇 장을 더 찾아서 살펴 보자 생각했던 대로 였다. 이와이즈미와 어울려 노는 사진에서도, 팬이라던 여학생들과 어울려 찍은 사진에서도, 저 멀리에서 게임을 하는 모습이 찍힌 사진에서도. 마츠카와가 오이카와의 등을 바라보는 사진이 대부분이었다. 오이카와는 제 가설을 좀 더 확실히 할 증거가 필요했다.

 

 "혹시 연극했을 때 찍은 비디오 있어?"

 

 "잠시만, 아, 여기."

 

 "고마워, 보고 금방 돌려줄게."

 

 오이카와는 반 아이에게 캠코더를 받아 들고는 영상을 확인했다. 그리고 로미오와 줄리엣이 만난 장면을 본 순간 오이카와는 깨달았다. 그는 캠코더를 급하게 책상에다가 내려 놓고는 6반으로 향했다.

 

 "맛층! 나와 봐!"

 

 마츠카와는 거의 일주일만에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깜짝 놀라서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 곳에는 헐레벌떡 달려 온 오이카와가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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